전세계 노동 인구의 9할이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증에 빠진다면, 사회엔 얼마나 큰 혼란이 올까? 당장이라도 세상이 멈출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별 혼란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지금도 그런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갤럽(Gallup)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자신의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직원은 전체 노동 인구의 13%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87%는? 그저 하루하루 회사에 나가 주어진 일들을 해나갈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업무에 무관심하며, 거기에 몰입하지 못하고, 더 나쁜 경우엔 ‘적극적으로 업무를 외면하거나 회사에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업무 참여도와 생산성 간의 높은 상관성을 고려해본다면, 이 데이터는 당혹스럽기 그지 없다. 이 문제에 관해 일부 전문가들은 ‘게임화(gamification)’이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제안한다.
게임화라는 개념에 관해 널리 퍼진 오해는 그것을 ‘모든 것을’ 게임으로 치환하는 방법론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게임화 이론의 본래 의미는, ‘게임과는 무관한 상황에 게임 설계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대상자들의 참여도와 문제 해결 능력을 증진하는 것이다.
SAP 설계 및 공동 혁신 센터 미주 사업부의 전략적 설계 서비스 팀을 이끌고 있으며 <업무 속의 게임화: 참여를 촉진하는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설계하기(Gamification at Work: Designing Engaging Business Software)>의 공동 저자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자나키 쿠마는 “보상과 강화로 조직 내 구성원들에게 당신이 원하는 행동 양식을 전달하는 것이 게임화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게임화 방법론은 이미 5년 여 전부터 주목 받아온 개념이지만, 일련의 이유로 최근 들어 다시금 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리서치 기관 테크나비오(TechNavio)는 국제 게임화 시장이 2018년까지 평균 68.4%의 높은 성장세를 이어나갈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게임화 성장세를 주도하는 주 영역이 바로 ‘디지털 기반’ 업무 현장들이라는 점이다. 이들 산업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해와 친숙도가 높은, 젊은 연령대의 구성원 비중이 높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리스크 감수 경향이 높고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에 대한 피드백에 적극적이란 점도 이들 산업(과 그것을 구성하는 젊은 인력들)의 특징이다. 쿠마는 이러한 특성들이 게임화 이론과 좋은 호흡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게임화 방법론의 개발과 활성화에 기여한 또 하나의 측면으로 빅데이터와 소셜 미디어, 모빌리티 등의 최신 기술을 함께 언급할 수 있다.
쿠마는 “빅데이터는 게임화의 엔진과도 같다. 소셜 미디어나 모바일 기기에서 수집한 사용자에 대한 정성적 데이터의 이용이 가능해지고, 거기에서 유의미한 데이터들을 추출해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그들의 행동 양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임화 과정의 개발 역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오랜 기간 세일즈 부문에서 직원 동기 부여를 위해 활용돼왔던 리더보드(leaderboard)가 이제는 기업 애플리케이션의 형태로 바뀌어 더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세일즈포스의 CRM 플랫폼에 게임 테크닉을 적용해주는 일련의 앱들을 사례로 얘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뱃지빌 포 세일즈포스(BadgeVille for Salesforce) 역시 그 중 하나다. 판매 프로세스나 행동 양식과 관련한 미션을 설계하고, 그에 대한 사용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게 이 앱의 기본적인 동작 원리다. 참여의 보상으로 사용자들은 점수나 뱃지를 획득하고, 애널리틱스 도구는 각 사용자의 이용 경향에 대한 종단적 데이터를 축적한다.
SAP는 자사의 커뮤니티 네트워크(Community Network)에 대한 사용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새로운 게임화 모듈을 선보인 바 있다. 2013년 런칭한 이 모듈은 미션 설계 및 활동 추적 기능을 갖췄고, 사용자들이 참여를 통해 획득한 뱃지 및 성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모듈을 통해 이 기관은 사용자 활동 수준 400% 증가, 커뮤니티 피드백 96% 증가라는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는데 성공했다.
게임화의 핵심은 사용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에게 기업이 원하는 행동 양식을 훈련하는 것이다. 상품 판매량 증대, 보다 나은 구매 의사 결정 등, 기업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이 게임화의 ‘미션’이 될 수 있다.
쿠마는 “농경 사회와 산업 사회, 정보 사회를 거쳐 오늘날 우리는 개념 사회(conceptual age)에 도달했다. 오늘날의 생산성이란 얼마나 많은 농작물을 수확하고 얼마나 많은 창고를 메웠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를 창출했는지의 문제다. 이를 위해선, 기업 미션에 대한 직원들의 참여가 필수다”라고 강조했다.
4가지 동기화 요인
뱃지빌 행동 연구소의 설립자이자 현재는 최고 설계 책임자로 재직 중인 스티브 심스는 자극 받는 주요한 동기에 따라 사람을 4가지 분류로 나눈다.
첫째 유형은 성공에 대한 욕구가 큰 집단으로, 이들에겐 경쟁자의 존재나 리더보드를 통한 명확한 성과 비교가 유효한 효과를 보인다.
다음으로 소속감을 중시하는 집단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인정을 중시하는 집단이 있다(심스는 프로그래머들의 질의 응답 사이트 스택 오버플로(Stack Overflow)의 활동가들을 그 대표적인 유형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불확실성을 꺼리며 안정감을 추구하는 유형도 있다. 그들에겐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상황을 보여주는 시각적 지표가 참여도 향상에 도움을 준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게임화를 통해 주입된 동기가 내재화되고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야채 먹기 싫다는 아이에게 초콜릿을 바른 브로콜리를 주는 것과 유사할 뿐이다. 겉으로 혹할지는 몰라도 결국 그 일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스는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뭔가를 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무엇에 흥미가 있는지 알고 그것으로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다면 윈윈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바로 게임화의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게임화의 좋은 이용처 ‘기업 SW 활용’
게임화를 활용하면 기업이 투자한 소프트웨어를 직원들이 많이 활용하도록 장려할 수도 있다.
심스는 “기업 소프트웨어 활용에 있어 게임화가 갖는 장점은 여러 가지지만, 굳이 하나만 꼽자면 소프트웨어 자체의 도입과 소프트웨어 이용(engagement)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 소프트웨어 사용률은 대부분 50%를 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게임화를 통해 적절한 사용 동기가 부여될 경우 사용률을 상당 수준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효율적인 게임화란 움직이는 과녁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우선 순위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행동 동기 역시 시간이 지나며 바뀔 수 있다. 심스는 “수치를 읽고 이러한 변화를 파악해 프로그램을 여기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 게임화가 소프트웨어 설계에 너무나 핵심적인 개념이 되고 있어 오히려 몇 년 후면 게임화라는 용어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SAP의 쿠마는 “현재는 사용자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지, 그리고 과제 수행 후 얼마만큼 만족감을 느끼는지를 기준으로 소프트웨어 설계의 품질을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는 사용자가 애초에 과제를 수행할 의지가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해당 사용자에게 과제를 수행할 동기를 부여해 줄 지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소프트웨어 설계의 근간 개념으로 삽입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dl-ciokorea@foundry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