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대기업이 3년간 추진한 디지털·조직 문화 트랜스포메이션은 결국, 끈기가 성과를 이끌었다.

전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프로젝트 중 약 70%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대부분은 반짝이는 신기술만 좇고 정작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뒷전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3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통해 이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필자는 여러 컨설턴트와 연구 전문가로 구성된 팀의 일원으로, 세계 최대 관광 기업 중 한 곳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프로젝트 규모는 약 10억 달러였다.
AI나 블록체인을 떠올리기 쉬운 이 프로젝트는 사실 수십 년 된 레거시 시스템을 해체하고 부서 간 사일로 구조를 허무는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겉보기에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혁신적이었다. 딜로이트 캐나다 동료와 함께 전통적인 공급망 사고방식에서 공급 네트워크 관점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수 있었다.
거대한 계획, 거대한 도전
이 관광 대기업의 대규모 트랜스포메이션 프로젝트는 최고경영진의 자각에서 출발했다. 2015년, 한 임원이 회사의 기술 수준이 수십 년 뒤처졌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에 지주회사는 모든 계열사의 현대화를 지시했고, 경영진은 조달부터 창고 관리까지 모든 영역을 현대 플랫폼으로 이전하기 위해 수억 달러의 예산을 빠르게 배정했다.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여한 필자의 팀은 곧 이 ‘디지털 드림’이 실제로는 ‘혼돈’을 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서상으로는 간단했다. 레거시 시스템을 교체하고, 프로세스를 표준화하며, 회사 전반의 데이터를 통합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30년 된 조직이 수많은 프로세스를 층층이 쌓아온 상황이었다. 직원들은 낡은 방식에 적응하며 일을 해왔고, 시스템도 그에 맞춰 굳어져 있었다.
예를 들어, 구매 시스템은 각 부서가 자체 개발한 도구와 스프레드시트를 엮은 뒤, 팀별로 필요에 따라 맞춤화한 ‘짜깁기’ 형태였다. 테마파크, 호텔, 레스토랑, 소매점 등 각 부서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운영됐고, 프로젝트도 부서 단위로 따로 추진돼 효과가 해당 부서에만 국한됐다. 이로 인해 기업 전체에 수많은 단절된 솔루션이 난립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기술 투자와 비즈니스 요구 간의 전략적 불일치를 하나씩 확인하게 됐다.
복잡성은 회사 규모로 인해 더욱 심화됐다. 이 기업은 하나의 조직이라기보다 180개가 넘는 글로벌 거점이 매일 자체 및 외부 창고, 공급업체에서 다양한 물품을 공급받는 생태계에 가까웠다. 단순한 선형 공급망이 아니라 내부 조직과 파트너가 얽히고설킨 공급망이었고, 조직의 거의 모든 부문이 이 구조에 얽혀 있어 어느 한 곳에서 변화가 생기면 공급업체, 창고, 심지어 고객 경험까지 영향을 받았다. 이 때문에 우리는 프로젝트 초기부터 경영진에게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한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회기술적(Socio-Technical)’ 성격의 변화이며, 기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를 바꾸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점은 프로젝트의 첫 번째 핵심 과제였던 ‘소스 투 페이(Source-to-Pay)’ 조달 플랫폼 도입 사례에서도 잘 드러났다. 단순한 IT 도입이 아니라 6개 부서가 참여했으며, 각각의 부서는 서로 다른 프로세스와 우선순위를 갖고 있었다. 이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기 위해선 오랜 갈등부터 해결해야 했다. 예를 들어 재무 부서는 엄격한 통제를 원했고, 운영 부서는 더 많은 유연성을 요구했다. 우리는 효율성과 투명성 강화를 목표로 했지만, 모두를 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에는 만만치 않은 저항도 마주해야 했다.
공급망에서 공급 네트워크로
초기 단계에서 전반적인 사고방식에 있어 미묘하지만 중요한 전환을 시도했다. 공급망(supply chain)이라는 개념 대신, 공급 네트워크(supply network)라는 관점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화는 복잡한 시스템을 추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효과적인 관리로 접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첫 번째 단계로 기업 내에서 주문, 데이터, 의사결정이 어떻게 흐르는지 기록했다. 조사 결과는 무엇보다도 ‘화려한 신기술’보다 ‘더 나은 조율’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복잡성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새롭게 배웠다. 오히려 복잡성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었다. 조직의 복잡하고 적응적인 공급 네트워크 시스템은 다수의 자기 조직화(self-organizing) 요소로 구성돼 있었다. 이런 상호의존성을 무시하고 억지로 단순화하면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한 임원은 이미 복잡한 환경에 더 많은 복잡성을 더하기보다는, 조직 내 모든 구성원 간의 기존 연결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초점을 바꿔, 영향받는 각 부서 대표로 구성된 교차기능 워킹 그룹을 구성했다. 핵심 프로세스를 하나하나 점검하며, 각 부서가 제각기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힘을 모으게끔 조율했다.
공급 네트워크 사고방식을 실제로 적용한 사례 중 하나는 호텔 운영과 다른 사업 부문 간의 불일치를 해소한 방식이었다. 초창기 호텔 부문은 고객 예약과 물류 수요를 독립적으로 관리했으며, 신제품 출시나 수요가 급증할 수 있는 이벤트도 파악하지 못했다. 호텔과 타 부서 간의 조율 부족은 예기치 못한 혼란을 초래했다. 예를 들어, 주말 성수기에는 호텔 팀이 프로모션 정보를 모르고 있어 핵심 제품이 품절되는 일이 발생했다. 전략적 불일치의 대표 사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채널과 통합 기획 회의를 신설했으며, 호텔 부문을 공급 네트워크 전체 구조에 다시 통합했다. 각 부서를 ‘고립된 왕국’이 아닌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시스템 내 피드백 루프도 함께 분석했으며, 그중 일부가 전략 불일치를 악화시키는 악순환(vicious cycle) 구조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새로운 프로세스 설계 과정에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부족하면, 결과물은 그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 이 불일치는 이해관계자의 무관심으로 이어졌고, 참여 저하와 성과 악화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추후 연구에서도 이해관계자 참여 부족, 기술 역량 노후화, 구조적 문제 등 세 가지가 결합되면서 전략적 불일치와 프로젝트 실패를 초래한다는 패턴이 확인됐다. 우리는 이 메커니즘을 인식하고, 최종 사용자는 설계부터 실행까지 모든 단계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또한 반복적으로 장애를 일으키던 핵심 인프라 일부는 신규 기능을 덧붙이기보다 일시적으로 운영을 중단시켰다. 흔들리는 기반 위에 기능을 더하는 대신, 근본을 다지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몇몇 악순환을 선순환(virtuous cycle) 구조로 바꾸었다. 초기의 성공이 신뢰를 형성했고, 이는 다음 단계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수용성으로 이어졌다.
이해관계자와 시스템의 공동작업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협업하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이해관계자 정렬과 변화 관리에 더 많은 집중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먼저 강력한 거버넌스 구조를 수립했다. IT, 운영, 재무, 상품기획 등 핵심 부서의 리더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는 격주로 회의를 열어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갈등을 해결했다. 형식적인 위원회가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조직이었다. 예컨대 마케팅과 공급망 간 데이터 교환에 문제가 발생하면, 회의 중 바로 논의하고 해결했다.
모든 이해관계자를 한자리에 모은 덕분에 초기 단계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재고 시스템의 신규 기능이 직원 업무 흐름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을 때, 운영 책임자가 이를 보고했고, 우리는 즉시 배포 계획을 조정했다. 과거 같았으면 전체 배포 이후에야 문제가 드러나고, IT 부서와 현업 부서 간 책임 공방이 이어졌을 것이다.
다음 단계는 소통과 조직 문화였다. 과거의 실패한 프로젝트들을 통해 이메일 몇 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보다 개인화된 접근법을 시도했다. 각 부서에서 영향력이 큰 직원을 파악해 ‘변화 챔피언’으로 참여시켰다. 이들에게 단순히 무엇이 바뀌는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바뀌는지, 그리고 자신의 업무가 전체 네트워크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설명했다. 이러한 투명성은 우군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직원들은 이번 전환을 IT 지시사항이 아닌 필연적인 발전 과정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교육과 공진화(co-evolution)도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삼았다. 여기서 공진화란 기술과 조직이 서로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뜻한다. 새로운 조달 플랫폼을 도입할 때, 시스템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려면 팀 재구성과 역할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일부 구매팀과 물류팀을 하나의 프로세스 책임자 아래 통합했고, 일상적인 협업 수준도 높아졌다. 직무 기술서도 수정했다. 예컨대 구매 담당자는 단순히 발주하는 것을 넘어서, 시스템에서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는 역할이 추가됐다. 이에 따라 교육에 투자했고, 호텔 관리자가 재고를 기록할 수 있는 대시보드 같은 소프트웨어 조정도 사용자의 피드백에 따라 반영했다. 이런 조정은 때때로 혼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우리는 구조적 변화와 조직적 변화, 두 가지 차원을 의식적으로 고려했다. 이후 연구에서도 이 두 변화가 공급 네트워크의 복잡성과 동기화되지 않으면 전략적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실제로는 새로운 시스템이나 프로세스를 도입할 때마다 워크숍, 코칭, 인센티브 구조 등을 제공해 도입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중앙집중형 배송 계획 프로세스를 도입했을 때도, 현장 관리자의 성과 지표를 기존의 지역 효율성 중심에서 네트워크 전반 성과를 반영하도록 조정했다.
3년간의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모든 것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명확한 거버넌스 체계, 향상된 데이터 투명성, 통합된 조달·창고 관리 시스템, 부서 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구축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복잡성을 수용하고 지속적인 학습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조직의 지속적 역량이 됐다. 연구자이자 컨설턴트로서 이 여정은 험난했지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기초를 다지고 사람을 정렬시키는 지극히 평범한 작업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IT 의사결정권자를 위한 시사점
대규모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모두 저마다 다르지만, 핵심은 ‘기초’에 집중하고 ‘요란한 기술’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핵심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현대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가장 큰 효과를 낸다. 그리고 직원 참여는 빠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기술이 회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 관리는 시작 단계부터 투자해야 하며, 변화의 이유를 명확히 전달하고, 변화 챔피언을 육성하며, 최종 사용자도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
또한 공급망이 아닌 공급 네트워크 관점으로 사고해야 한다. 부서 간 기업 간 투명성을 촉진하고, 가치 흐름이 어떻게 조직과 파트너 네트워크를 통과하는지 지도를 만들어 병목 지점과 숨은 의존성을 파악해야 한다. 이 시스템적 관점은 조직 전체를 개선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며, 회복 탄력성도 강화한다.
대규모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겉보기엔 부담스럽고 매력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감내한 끝에 우리는 성과를 얻었고, 관광 그룹은 이제 미래 혁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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