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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여성 CIO에 듣는 ‘경험과 실패에서 얻은 교훈’

여성 IT종사자가 드물었던 시절, 일찌감치 기술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CIO로 은퇴한 킴 웬에게 몇 가지 조언을 들어봤다.킴 웬(왼쪽 사

킴 웬(왼쪽 사진)은 1980년대 호주 빅토리아(Victoria)에 있는 APM(Australian Paper Manufacturers)에서 수동 공정을 컴퓨터화하던 젊은 IT 임원으로 근무하던 때를 회상했다.

“나는 메리베일(Maryvale)에 있는 제지공장에 출근했었는데 당시 찻집 벽에는 흉물스러운 여자 포스터가 있었다. 자동화 엔지니어링 회사인 렙코(Repco)에는 여자 포스터가 있었고 아주 재미있었다.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한 남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젊었고 ‘거슬리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지만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것들을 치웠다.”

7월 1일, 웬은 기술 업계에서 37년간 종사한 후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마지막 12년 동안은 탭콥(Tabcorp)에서 갬블링 시스템 총 책임자 그리고 최근에는 CIO를 역임한 바 있다. 그녀가 은퇴할 당시 이 호주 최대 갬블링 회사인 타트 그룹(Tatts Group)과 합병되었다. 타트의 전 CIO 맨디 로스는 웬이 떠나면서 CIO직을 맡았다.

웬은 “탭콥과 타트의 합병 때문에 모든 직위가 중복되었으며 나는 [탭콥의 CEO] 데이비드 아텐보로우에게 ‘인수인계 위험을 낮추기 위해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맨디]와 나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합병이 촉매가 되었고 내 남편이 막 은퇴하면서 삶을 좀 더 즐기고 싶어졌었기 때문에 시기도 딱 맞아떨어졌다. 나는 갭이어(Gap Year)가 없었지만 아이들은 갭이어 동안 여행하면서 멋진 것을 경험했다. 나는 지금에서야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

웬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1년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빅토리아의 녹스필드(Knoxfield)에 있는 제조기업 로셀라 립톤(Rosella Lipton)에서 입고 관리 직원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해당 기업은 1988년 유니레버에 인수됐다.

웬은 “첫 3개월 동안 IT관리자를 졸라 ‘와서, 내 밑에서 근무하라’는 말을 하게 만들었다. 타투라(Tatura)에 있는 로셀라의 공장을 거닐 때 모두가 나를 괴물처럼 바라보았다. 그들은 통이나 라인에 양파 가루를 넣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장에서 여자가 거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웬은 제조업에 대한 진심 어린 열정이 있었고 해당 분야에서 기술 주도적인 자동화 시대를 겪었다. 가족 대대로 기술직에 근무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TRHKJC(The Royal Hong Kong Jockey Club)에서 CIO를 역임했다.

웬은 “내가 탭콥에서 CIO의 자리까지 오른 것은 좀 이상했다. 내가 IT 분야로 진출하는 데는 아버지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APM과 로셀라 립톤에서의] 일이 모두 재미있었다. 나는 제조업이 좋았고 자동화의 시대였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레시피를 자동화하여 토마토소스 등을 만들 수 있었다. 그전에는 누군가 수개월에 걸쳐 계산해야 했지만, 주문을 넣으면 [시스템이] 재료를 뱉어냈다”고 웬은 말했다.

당시 웬은 야간에 학교를 다니면서 모내시대학교(Monash University)에서 컴퓨터 공학 학사 학위를 마치고 멜버른대학교(The University of Melbourne)에서 경영 및 기술 석사 학위를 수료했다.

웬은 “컴퓨터 공학 학위를 받은 여성은 매우 드물었고, 나 외에 3명이 더 학위를 받았던 것 같다. 나는 얼마 전 남성이 지배하는 산업에서 은퇴했고 [되돌아보니] 그런 것에 전혀 괘념치 않았다. 나는 운 좋게도 판단이 빨랐다”고 이야기했다.

초기의 교훈
APM(암코(Amcor))에 있을 당시 웬은 컴퓨터 자동화의 문화적인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구식 디지털 혁신 계획을 통해 공장에 IBM의 ‘녹색 화면(Green Screen)’ 메인프레임을 적용한 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기술팀은 직원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알며 화면을 보고 종이 중량에 대한 올바른 치수를 입력할 수 있다고 잘못 가정했었다. 공장 전체의 컴퓨터 능력 수준은 너무 낮아서 프로그램이 조기에 실패했다.

“교육이 제공되지 않았고 제지공장의 현장직 사람들의 능력 수준이 [낮다는] 인식이 없었다. 우리는 수년을 투자했으며 절대로 철회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화면을] 읽을 수 없는 경우 보직만 변경했다. 이와 함께 전체 인력 전략과 정리 활동이 함께 진행되었다”고 웬은 말했다.

그리고 웬은 ‘차 시중드는 여성’을 고용하여 매 근무일 오전 11시경에 트롤리를 끌고 다니도록 하던 1990년대 초 에든버러(Edinburgh)에 있는 생명보험 및 연금 기업 스코티시 위도우즈(Scottish Widows)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5년 동안 근무하면서 역량을 키웠다.

웬은 다시 APM에 고용되면서 호주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때부터 승진하기 시작하여 해당 기업의 물류 사업부 책임자의 자리에까지 이르렀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웬은 퀘스트 소프트웨어에서 연구 개발 부사장을 역임한 후, 탭콥에 갬블링 시스템 GM으로 합류했다가 2009년 5월 CIO로 승진했다.

웬은 자신에게 행운이 따랐기 때문에 자신의 직업 생활 중 기술을 통해 혁신할 수 있는 산업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으며, 그녀는 ‘가능성의 미학’을 목격했고 거기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탭콥 이직은] 아버지 또는 해당 산업에 대한 나의 지식과 상관이 없었다. 2000년, 인터넷 그리고 소비자들이 [갬블링] 제품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변화하는 초창기였고 이 산업이 많은 혁신을 겪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남자는 마권 판매소를 방문하고 여자는 휴대전화로 도박을 거는 현실로부터 완전히 바뀔 수 있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탭콥은 현재 호주 최대의 기술 기업 중 하나다. 그 핵심 역량은 기술이며, 단지 내기를 통해 돈을 버는 것으로 그녀는 말했다.

직업 생활 중 가장 큰 실수
지난 37년 동안 경험한 가장 큰 실수에 대해 웬은 한 단계에서 아웃소싱 방식을 고집했다가 재앙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내 전임자는 IT기능의 대부분을 아웃소싱 했었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이어서 “문화와 언어가 다르며 다른 국가에 거주하는 인도인들을 고용하여 제품을 제공하도록 할 수는 없다. 게다가 도박은 인도에서 불법이다. 총체적인 난국이었으며 나는 수년 동안 고군분투했다”고 설명했다.

웬은 “다른 사람이 아웃소싱하고 나는 업무가 제대로 처리되게 하려고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우리는 더욱 민첩하게 움직이고 바로 되돌렸어야 했다. 아웃소싱이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일상적인 업무는 내부에서 처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뒤처리’만 담당하는 기술 부문
웬은 기술 부문에서 젊은이, 특히 여성들에게 IT직업 생활을 홍보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질문하자 진지하게 답했다.

웬은 “솔직히 뒤처리를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영업 및 마케팅 엔진은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아직도 기술을 단순히 진입 장벽에 불과한 ICT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총체적인 기술 통합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며,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여성이 할 수 있는 많은 활동이 있지만 정부나 교육 [부문에서] 통일된 접근방식을 취하지 않고 있다”며 “최악의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고 밝혔다.

웬에 따르면, 지속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정부가 ‘혁신 국가’와 관련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신생기업 투자와 지원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아이들은] 자라서 교육 시스템에 기술에 대한 지원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지난해, 웬은 탭콥에서 근무하면서 10학년 학생과 부모 등 1,0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여학생들은 부모나 이모 등 다른 가족 구성원이 이미 STEM 부문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에만 관련 학위 취득을 고려할 뿐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웬은 “게다가 [IT 종사자와]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여학생들은 부모들이 능동적으로 의욕을 꺾어 놓았다. 젊은 여성은 IT 부문에서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 프로젝트 관리자, 비즈니스 분석가, 설계자 등으로 종사하면서 가족도 꾸릴 수 있었다. 기술과 유연한 직업 생활에 대한 문화는 완벽하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웬에 따르면, 미래에는 기술이 관련되지 않은 역할이 거의 없을 것이다.

“마케팅은 검색 엔진 최적화와 구글 애널리틱스(Google Analytics)가 핵심이며, 더 이상 색깔이나 포스터 인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역할이 바뀌고 있으며 미래의 인력을 보면 역할 중 70%가 최소한 기술에 기초할 것이며 우리는 아이들이 이에 대비하도록 돕지 못하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웬은 “STEM 학위를 받는 여성이 25% 미만인데, 이 정도 참여 수준으로 어떻게 다양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고 질문을 던졌다.

여성 컴퓨터 공학 전공자에 대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에 관해 웬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용기를 갖고 열심히 일하면 멋진 경력을 쌓을 수 있다. 가족을 부양하면서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dl-ciokorea@foundry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