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GS리테일 CIO를 퇴임한 왕영철 전 상무가 오는 6월 5일 열리는 한국IDG의 ‘CIO Perspective’에서 연사로 나서 ‘IT리더의 성공 요소와 IT프로 만들기’라는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 최장수 CIO로 꼽히기도 한 그는 현직 CIO들에게 이 행사에서 자신의 생생한 경험담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또한 현재 케이사이트 컨설팅이라는 신생기업에 몸담고 있는 왕 부사장은 그의 34년 직장생활 노하우를 담은 ‘잘나가는 이대리 죽 쑤는 이과장’이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CIO를 준비하는 수많은 이대리, 이과장들을 위한 조언들도 수록돼 있다. 다음은 왕 부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CIO KR : 먼저 ‘잘나가는 이대리…’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궁금하다. 어떤 계기로 책을 쓰게 됐고 실제 집필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왕영철 부사장 : 그동안 회사에서 신입사원, 중견 사원, 새로 관리자가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의를 많이 했다. 강의는 장소와 시간의 제약 때문에 전달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강의 내용들을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책을 쓰지는 못했다. 마침 정년 퇴임하면서 2달 동안 시간을 갖게 됐다. 공식 퇴임 일자는 올 3월 말이지만 인수인계는 1월부터 시작해 2달 동안 책을 쓰게 됐다. 이 기간 동안 하루 10시간씩 집중적으로 썼다.
강의와 집필의 차이점은, 강의는 얼굴을 보면서 하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을 강조할 수 있지만 책은 그렇게 하면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그래서 책에서는 왜 중요하고,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를 더 정밀하게 다시 한 번 정리해야 했다.
이 책은 직장인들의 지침서다. 직원들을 만나면서 자주 했던 조언들이고 강의를 통해서 몇 번 강조했던 것들이다. 요약하자면, 선행적으로 일해야 한다. 말로는 “선행적으로 일하라”고 하지만 그게 왜 중요한 지에 대해서 실제 사례를 들어서 설명해 준다면, 듣는 사람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왜 선행적으로 일하는 게 중요하냐면 시간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선행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경험도 없어 좌충우돌하면서 품질 보장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부터 준비하면 시간 여유가 있어 품질도 보장할 수 있고, 하다가 잘못되면 시나리오 1, 2, 3을 만들어 지속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두번째 강조하고 싶은 것은 주인의식이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면 일이 재미 있다. 엄마가 공부하라고 해서 공부하면 재미 없지만, 스스로 하면 재미있다. 선행적으로 일한다는 것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습관이다. 마지막으로 업무의 맥을 짚어야 한다. 업무의 맥을 찾는 노하우는 앞서 말한 선행적으로 일하기와 주인의식을 통해 숙달돼야 가능하다.
CIO : 그동안 만났던 IT직원들을 볼 때, 특히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왕 부사장 : IT는 비즈니스 위한 드라이버기 때문에 이네이블러 역할을 해야 한다. IT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많은 IT종사자들이 기술로 접근하는데, 이것은 교육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IT종사자들의 생각을 바꾸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처음부터 IT나 전산실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기술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IT직원이 기술로만 접근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나? 현업과 부딪힌다. 현업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이야기해 현업은 못 알아듣고, 현업은 현업대로 불만이 쌓여 많이 싸우게 된다.
그래서 IT한테 비즈니스를 강조하면서 비즈니스를 이야기하고 IT용어를 쓰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IT가 사업 계획을 자동으로 따라가게 돼 있다. 처음부터 랜이 어떻고, TCPIP가 어떻다고 얘기해봤자 통하지 않는다.
IT종사자들이 간과하는 게 있는데 바로 산업 역량(Industry Skill)이다. IT는 비즈니스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마케팅, 전략, R&D, 물류 등을 이해하지 못하면 IT전략을 세울 수 없다. 바로 이런 산업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맨날 자바 얘기만 한다는 게 IT종사자들의 문제다.
창의적 혁신도 마찬가지다. 산업 역량에서 혁신이 나오는 것이지, 자바에서 혁신을 나오나? IT종사자들은 산업 지식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저거 해서 뭐하나?”하는데 사실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진짜 컨설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계속 바뀐다. 새로 시작한 사람이 훨씬 더 프로그래밍 언어에 뛰어나다. 하지만 산업 지식으로 무장한 직원은 추월 당하지 않는다.
CIO : 산업 지식은 어떻게 하면 잘 습득할 수 있나?
왕 부사장 : 책으로는 안된다. 실전에 직접 들어가야 한다. 영업 부서를 지원해야 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영업부서에서 일해 보는 것이다. 그런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현업과 얘기하고, 본인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현업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고객과 만나야 하는 IT업체 담당자라면, 어떻게 하면 고객사가 잘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현업 요구사항을 찾는 습관을 기르고 거기에 몰입하며 묻고 연구하는 것이다.
IT담당자들은 일이 터지면, 고객 만나는 것을 꺼려 한다. 야단 맞을 걸 아니까 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이야 본능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화가 난 고객을 만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만나기 싫어도 만나야 한다. 왜 만나야 하는지는 마치 응급실에서 ‘인턴 의사’라도 만나면 조금이라도 안심하는 보호자의 심정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현업 사용자도 그렇다. 일단 신입사원이라도 현장에 오면 안심한다. 그리고 현장 가야지 문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현장에 가면, IT담당자의 마음은 무겁지만 사용자들은 그 때부터 일이 해결될 것 같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게 된다. 현장으로 IT담당자가 찾아가면, 마치 응급실에서 인턴 의사를 보듯 이미 갈등의 절반은 해소가 된다.
고객이 짜증을 부리면, 그 고객을 만나기 싫은 마음은 이해한다. 꾸지람을 들으면서까지 현장으로 가게끔 스스로를 만들려면, 이렇게 생각해 보라. “불만이 많은 고객은 당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것이다. 불만 많은 고객들이 계속 남아 있다.” IT업체에서 일해보니, 별다른 불만이 없던 고객들이 어느 날 보면 다른 업체로 바꾸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무런 불만이 없는 고객이라면, 떠날 수 있는 고객이다. 부부싸움도 마찬가지다. 기대치가 높으니까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배우자와 이혼할 생각이면 말도 하지 않고 싸우지도 않는다.
CIO : 예비 CIO들에게, 또는 현직 CIO들에게 롤모델로 꼽혔다. 어떤 점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왕 부사장 : 책에도 써 있는데 동료, 고객의 신뢰를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두라고 말하고 싶다. ‘잘나가는 이대리…’의 첫 장이 ‘약속’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IT는 다른 산업과 다르다. 우리가 TV 한 대를 사면, 전자제품회사와 소비자의 관계는 구매 행위로 끝난다. 하지만 IT는 계약하면 그 때부터 진짜 업무가 시작된다. 신뢰가 깔려 있지 않으면 롱런할 수 없다. 그 다음 가치를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킬이다. 스킬은 계속 한 분야에서 개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관계다. 관계 역시 신뢰처럼 고객과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이 3가지는 지금까지 본 롤모델이 되는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일을 잘한다고 평가할 때 그 사람에게는 3가지 공통점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 사람은 좀 아닌 것 같다”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셋 중 하나가 깨져 있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직원을 평가할 때도 이 3가지를 주로 본다.
CIO : GS리테일에서 12년 동안 CIO를 지냈다. CIO를 지내면서 스스로 가장 잘 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있다면?
왕 부사장 : 다른 CIO에 비해서 좀더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협력사를 갑을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로 봤다는 점이다. 말로는 윈윈이라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갑의 입장이 돼서 말로는 파트너라고 하는데 진정으로 파트너로 대하느냐? 을 생활을 하다가 갑을 하다 보니 양쪽을 다 알게 됐다. 어느 고객 사이트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면, 절반 이상은 그 고객의 문제다. 의사 결정일 수도 있고 프로세스일 수도 있다. 그런데 모여서 회의하면 일반적으로 협력사 탓으로 돌린다. 그러면 을은 거기에 반박하지 못한다. 하지만, GS리테일은 계약서에서 ‘파트너’로 명기하고 진정한 파트너로서 대우해주는 문화다.
CIO였을 때,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잘못한 게 뭐냐”고 묻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은 다음, “그럼 당신 회사의 잘못은 뭐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고 항상 파트너 탓만 하면 원인도 찾지 못하고 발전도 안된다.
CIO였을 때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데이터센터에 먼저 방문했다. 거기서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이 프로젝트를 왜 해야 하며,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가치를 기대하는지를 이야기했다. 설명이 끝난 후 함께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 효과는 매우 크다. 데이터센터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이 생긴다. “내가 이렇게 중요한 프로젝트에 기여하는구나. 유통회사가 없으면 소비자들이 논밭으로 직접 사러 가야 하는데 그런 불편함을 없애주는 유통사에 내가 기여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센터 직원들이 이 회사에 가치를 주고, 결국 최종 사용자에게는 사회에 기여한다고 느끼도록 만들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면,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지원하고 도와준다. 그런 것들이 ‘윈윈한다’는 것이다.
CIO : 은퇴 후 새로 시작한 일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왕 부사장 : 케이사이트 컨설팅은 KPMG에서 분사한 신생 기업이다. 정부 IT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대기업 참여 제한 때문에 역량 있는 중소기업들이 중요해졌다. 이 회사가 앞으로 활약할 것이라 기대한다.
컨설팅이란 IT와 밀접하다. BPR에 IT가 빠지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고, 여기에 프로세스를 잘 모르는 사람이 설계해도 안된다. 일반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와 IT를 모두 전략적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는데 과거에 한국IBM에서 했던 경험과 GS리테일의 경험을 녹여낼 수 있을 것 같다.
CIO : 한국IBM, GS리테일, 그리고 컨설팅회사까지 경력에 큰 변화가 많다. IT가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IT인들 자신은 변화하는 걸 꺼려하는 경우가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IT인들에게 조언하자면?
왕 부사장 : 사실 한국IBM에 있을 때도 변화가 많았다. 새로운 업무를 해 놓으면 그 이듬해에 다른 업무로 바뀌었다. 누구나 그런 변화를 겪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그 변화가 잘 됐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배가 된다. 그것은 나한테 기회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변화=기회’라는 경험을 갖게 된다.
어떤 사람은 변화할 때마다 잘 안된다. 그러면 나쁜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좋은 경험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갖는 것이다.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긍정적으로 보는 습관을 기르기 바란다. ‘이번 변화에서 뭔가 새로운 게 나한테 기회가 있을까?’ 이렇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IT일이란 게 밤도 많이 샌다. 밤을 새면서 “내 팔짜야“라는 사람이 이는 반면, “문제가 터지면 터질수록 내 실력은 높아진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IBM에서 근무하던 당시, 한 번은 고객사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겨서 보름 동안 씨름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네트워크 지식의 90%를 갖게 됐다.
부정적인 자세로 일하는 것과 긍정적인 자세로 일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된다. 할 수 있다”라고 하면 정말 잘 된다. 새로 시작한 일은 컨설팅과 IT가 접목된 것으로 양쪽 모두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기여할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왕영철 부사장은 국내 최장수 CIO중의 한 명으로 한국IBM에서 19년간 시스템 엔지니어 및 영업을 담당했고, GS리테일에서 12년간 CIO를 역임했다. 경영 혁신을 위한 IT 거버넌스 전문가로서 2001년 GS리테일 CIO로 취임하면서 국내외 유통업계 최초의 프로젝트를 다수 추진했다. 4월에는 ‘잘나가는 이대리 죽 쑤는 이과장’ 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dl-ciokorea@foundry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