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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topher Phin

블로그 | 회고놀이… 애플 매뉴얼이 친절했던 옛날

아이폰 6 상자에는 작은 설명서도 함께 들어 있다. 설명서 한 쪽에는 아이폰에 달린 5개의 버튼이 각자 어떤 용도인지 적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아이폰 전원 켜는 방법이 적혀 있다. 그게 전부다.

물론 필요하면 PDF, HTML 형식이나 아이북스를 통해 더 자세한 매뉴얼을 받아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과거 애플 제품에 함께 제공되던 두꺼운 설명서에 비교하면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필자는 1991년 맥 데스크톱을 구매했을 때 함께 온 설명서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이는 심플하고도 우아한 그림 설명과 이해하기 쉬운 텍스트, 무엇보다도 분명하고 친절한 설명을 통해 맥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다음 페이지에는 마우스를 사용할 때 바탕화면 공간이 부족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다. 처음 마우스를 사용할 때는 이런 것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마우스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도 있다. 마우스 케이블이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하는 가처럼 기본적인 것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져서 누구나 다 아는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그토록 세세히,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하는 걸 이상하다 여길 수도 있다. 어쩌면 과거의 유물 취급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또한 아이폰은 맥보다 훨씬 직관적이기 때문에 전원 켜는 법 외에 다른 건 스스로 알아서 할 줄 알 것이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왜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가?

물론 요즘 사람들 중에 마우스 쥐는 법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또한 8,90년대 처음 PC라는 새로운 기계가 나오고 윈도우며 아이콘, 메뉴, 커서 같은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우리 삶 속에 소개됐을 당시에는 기본적인 것까지 하나 하나 알려줄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과거 애플이 제공하던 조금은 추상적인 개념들에 대한 차분하면서도 자세한 안내 책자가 필요한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 중에는 완전히 컴퓨터를 처음 쓰는 이들도 있고, 수 년간 컴퓨터를 사용해 온 이들도 있다. 예를 들어 ‘저장하기’와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의 차이에 대한 이 명확한 설명을 살펴보자. 적어도 내게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방문자 가이드보다는 훨씬 더 명확해 보인다.

심지어 “저장”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다. 나는 컴퓨터 초보자들을 강습하면서 꽤 많은 사람들이 저장하기의 개념 자체를 어려워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설명서는 꼭 필요하다.

이 외에 다른 설명들도 자세한 부분들에 있어서는 한 물 간 듯한 느낌은 있으나 여전히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수 년간 컴퓨터를 사용해 왔을 뿐 아니라 컴퓨터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경우 ‘메가바이트’나 ‘기가바이트’가 얼마나 큰 용량인지 잘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용량이 정확히 얼마나 큰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1991년 애플의 제품 설명서에는 이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나와 있다.

게다가 ‘플로피 디스크(floppy disk)’가 왜 ‘펄럭이지(floppy)’ 않는지까지 설명하고 있다!

설명서 전체가 간결하고도 명확한 정보로 가득하다. 애플의 별칭(alias)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읽어보자. 이런 자세한 설명은 현대의 많은 컴퓨터 사용자들에게도 분명 필요할 것이다.

또한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해 텍스트를 수정하는 방법, 자르기, 복사하기, 붙여넣기에 대한 설명 등이 매우 친절하게 돼 있다.

이런 설명서의 훌륭한 점은 단순히 뭘 어떻게 하라고 말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 작업을 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자세히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실제 예시까지 들어주면서 직접 해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이 부분에서 애플이 벤자민 프랭클린이 언급한 중국의 유명한 격언을 실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로만 하면 잊어버리고, 가르쳐주면 기억하며, 경험하게 해 주면 배운다.’)

이처럼 디테일에 신경을 쓰고, 읽는 이를 배려하며,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할 수 있는 안내책자를 만들려는 노력은 다른 곳에서도 엿보인다. 예를 들어 여기 이 부분에서는 접근성 기능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이 사진만 봐서는 확연히 드러나지 않지만 시력이 안 좋은 이들도 잘 읽을 수 있도록 커다란 글씨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맥 컴퓨터 역시 복잡하고 어려운 기계일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문제 해결에 관한 부분에서 ‘여유를 가지세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컴퓨터 문제로 누군가를 도와줘 본 적이 있다면, 대부분 사람들이 패닉 한 상태에서 컴퓨터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걸 알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패닉 하다가 문제 해결에 꼭 필요한 에러 메시지를 읽지 못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나온 대부분의 조언들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예를 들어 ‘컴퓨터 전원을 껐다 켜보세요’라는 조언은 아직도 유효하다. 또한 20년이 지난 지금도 커맨드+옵션+ESC 키를 눌러 프로그램을 강제종료 하는 기능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

그 밖에도 소개하고픈 것들이 많지만, 이 오래된 매뉴얼의 진가는 바로 스스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데 있다. 지금껏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개념들,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들(SCSI 터미네이터!) 등등. 그러니 집에 오래된 애플 설명서가 있다면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애플이 소프트웨어 기능뿐 아니라 그 기반이 되는 개념들까지도 친절히 설명해주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책자 뒷 페이지의 ‘판권장(colophon)’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이 안내 책자에서는 이 뒷 페이지를 책갈피 용도로 쓸 수 있게 해두었다. 나는 언제나 이런 부분들이 놀랍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토록 놀랍고 훌륭한 안내서를 만드는 과정을 안내하고 또 나 자신도 이런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맥(Mac)은 원래 그런 컴퓨터가 아니던가?

dl-ciokorea@foundry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