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내 IT부문이 전사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여기에서 추출한 정보로 기업의 혁신을 주도한다는 것.그리고 나아가 기업의 문화까지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
CIO를 비롯한 모든IT인들이 바라는 풍경이다.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현업 부서의 요구에 대응하기 급급하며,가치 창출보다는 비용 절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이트진로의 박환성 상무는 이런 측면에서 두드러진 인물로 보였다. ‘전산’, ‘IT’가 아닌 정보혁신실 상무라는 직책으로 프로세스 혁신과 문화혁신을 말하는 그를 IDG의 ‘CIO Perspectives 2012행사’에 앞서 서초동 사옥에서 만났다.
“ERP를 바탕으로 경영혁신을 넘어 문화혁신까지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평가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흔치않은 사례인데 무슨비결이라도 있으신지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사실 프로젝트는 완수 했습니다만 혁신은 계속 진행중이라고 봐주시는게 옳겠습니다.경영혁신이든 문화혁신이든 혁신은 늘 진행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70~80년 이상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하이트’와 ‘진로’가 한가족이 되었습니다. 성공의 경험과 기억을 가진 회사들이었고 그만큼 자존심도 강했습니다.합병 시너지를 위해 그리고 미래경쟁력을 위해 IT차원의 ERP구축이 아닌,경영 혁신을 통한 회사통합의 기반을 구축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ERP는 많은 회사에서 10년 이상 지난 오래 전 이야기다. 이제 ERP는 클라우드, BI,글로벌 등의 단어와 어울려 거론되기 시기다. 그러나 하이트진로의 프로젝트는 여러면에서 다른 기업들과 다르다.
이질적인 두 조직의 프로세스를 일원화 해 낸 것은 물론 ERP 23개 모듈과 모바일, BI데이터 분석, 기업포탈, 전자결제 등을 사실상 한꺼번에 진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안정화 기간이 필요없을 정도로 완성도 높게 진행됐다는 점도 특징이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한 컨설팅 기업 임원은“처음 시작할 때 정말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했다. 10년이 넘게 ERP를 비롯한 대형 프로젝트들을 진행해봤지만 이렇게 순탄하게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다는 게 납득이 안될 정도다”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박환성 상무는 아래와 같은 몇몇가지 나름대로의 성공요인을 전했다.
가장 큰 비결은 우수한 인력 참여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우리 회사 내의 인재들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에 주안점을 뒀죠. 인사팀과 공조해 우수한 인원을 찾고 이들을 프로젝트 팀으로 모으는 과정에 공을 들였습니다.”
박환성 상무는 그 결과‘보석 같은 인재’들을 모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생산,영업,관리 등에서 성실하고 열정 가득한 이들을 모아 업무혁신팀을 꾸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것. 현업에서 인정받던 사람들 이었기에 이후 현업 부서와 소통할 때 그만큼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그 과정에서 HR 최고임원은 부문별 담당임원들과 사전협의가 이뤄졌는지를 물었고 너무도 당연한 질문에 박환성 상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솔직히 협의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우수 부하직원을 선뜻 내주겠습니까? 협의를 하다보면 반대에 부딛혀 못 끌어옵니다. 두 회사의 통합시너지와 전사적 최적화를 위해 많은 자원이 투입되는 우리회사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프로젝트입니다.그들이 꼭 필요합니다.”
어렵게 암묵적인 승낙을 받고 인사명령을 통해 기어이 이들을 프로젝트 수행조직인 ‘업무혁신팀’으로 모으는데 성공했다. 박 상무는 다시 돌이켜보아도 이는 반드시 달성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러한 인재 욕심은 파트너사 참여인력에게도 적용됐다.하이트진로의 ERP프로젝트는 LGCNS와 진행했는데 인력 검증에만 3주를 소요했을 정도였다.그리고 그 결과 3인의 컨설턴트에 대해 사전에 교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VISION Making & Sharing
30여 명의 인재를 끌어 모은 그는 다음으로 동기와 비전을 불어넣는데 중점을 뒀다.
“우리는 축복받은 행운아들이다! 회사의 경영방식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 5년 후 10년 후 여러분이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었을 때 이상적인 경영 프로세스를 지금 만들어 놓는다고 생각하라”.
“그동안 느꼈던 잘못된 모습..개선하고 싶었던 부분들을 여러분들이 지금 개선해서 그려내라. 미래를 그려내면 반드시 시행되도록 약속하겠다.”
“여러분들의 열정과 의지에 우리회사의 미래가 달려있고 여러분들은 앞으로 ERP담당자가 아닌 우리회사 전반에 대한 경영혁신을 주도하는 핵심 인재로 관리될 것이다.”
“정보시스템 하나 바꾸자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집어치워라. 잘못된 관행을 없애고,불합리한 프로세스를 제거하고,가장 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그려보자.”
박상무는 교육, 워크샵, 회의시간 등 틈나는대로 그들에게 Mission과 Vision을 제시하고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팀원들은 스스로 문제를 찾고 고민하고 현장을 설득하는 혁신리더 역할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현장이 만족할만한 직접적 혜택에 초점
일반적으로ERP는 기업의 프로세스가 송두리째 변화는 대형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안정성에 가장 큰 초점을 맞춘다.
하이트진로의 경우에도 ERP 구축 후 1년 정도 안정화 기간 경과 후에 BI를 진행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러나 전혀 다른 결정을 내렸다.
현장 사용자들에게 즉각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데 역점을 두고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ERP하면 사실 일부 부서는 오히려 더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불편하고 힘들기만 하다는 말이 나오기 십상이죠. 그렇게 되면 지속적으로 혁신을 추진하는데 저해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혁신에 지원군을 얻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범위가 커져 리스크가 되더라도 각 부문별 계층별 사용자를 만족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생하더니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이런 정보도 산출되고 보이는구나’ ‘이건 정말 편해졌어’ 라는 반응들이 나타나야 하는 거였죠.”
“그래서 영업사원들을 위해 현장 영업 가능토록 모바일 오피스, SFA구축,자동 수금시스템이 구현되도록 했고,관리부분을 위해 펌뱅킹 연동의 자동 경비지급 등의 소소한 업무에서부터 경영진단 분석을 주로 하는 스태프 부서들을 위해 BI 시스템을, 경영자를 위한 EIS, 전사적으로 e-Accounting, 인사 셀프서비스,포탈 셀프구성 등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프로젝트의 혜택을 실감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혁신 철학과 리더십의 기반
그러나 프로젝트 성패에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가 모를까? 또 그래야 매끄러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문제는 이를 어떻게 이끌어내고 달성해내느냐일 터. 더욱이 박환성 상무는 변화를 견인하기 위해 외부에서 영입된 인물도 아니고 IT관련 부서 에서만 오랜기간 근무했었다. 있다. 어떻게 스폰서쉽을 확보하고 경영혁신을 추진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맡은 일에 전력하다보니 일에 있어서나 사람을 만난것도 운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86년 진로에 입사한 이래 줄곧 한 회사에서 근무했다고 볼 수 있으나 회사 경영상황의 부침속에서의 여러 경험이 회사전반의 업무를 이해하는데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된 듯 합니다.”
그는 회사의 확장 시기에 수많은 기업을 M&A하는데 IT담당자로 다른 부서의 팀장, 경영 컨설턴트, 회계사들과 함께 M&A팀에 참여했고, 97년이후 경영위기에는 계열사 매각 TFT에 참여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그렇게 3~4년 정도씩 두어 차례 참여하고 나니 회사경영을 이해하는 시야가 많이 넓어진 듯 했습니다. 직급에 과분한 좋은 경험을 쌓는 기회가 되었다고 봅니다.”
은퇴 후엔 중소기업에 대한 지식기부형 컨설팅을 하고 싶다는 그와의 대화 과정에서 IT를 비롯해 인수매각의 경험.금융과 경제에 이르기까지 꽤 넓은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였보였다.
지속적인 혁신을 이끌어가려면…
일반적으로 프로젝트가 끝나면 안정적으로 운영하는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이트진로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IT 부문이 혁신을 리딩해 나가기는 쉽지 않은데 어떻게 가능한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용자 특히 경영진이 요구하기 전에 의미있는 분석정보를 찾아 차별화된 분석 서비스를 계속 제공해 나가야만 합니다. 이를테면 제품별,공장별 원가분석이나 영업 채널별 거래처별 수익성 분석은 물론 신제품에 대해 표준원가를 반영한 CVP분석 등 회사전반에 대해 살펴보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현업부서와 경영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IT조직의 위상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때로는 많은 노력과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환성 상무와의 대화는‘천상 혁신가’라는 느낌을 안겨줬다. 하나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열두 가지 싫은 일을 해낼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무언가 해내는 이들은 안되는 이유보다는 되는 이유를 만들어가는 이들이다.
그는 치밀한 준비와 사람에 대한 욕심, 그리고 믿음을 기반으로 회사의 변화를 이끌어간다. 그리고 이제IT가 혁신을 주도해가는 풍경을 일궈내고 있다.
‘기업의 부침 속에서 생존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의 발언은 오히려 타고난 혁신가로부터 들을수 있는 표현으로 들렸다.
*박환성 상무는 진로에서 시스템 프로그래머, DBA를 거쳐 기술지원팀장, IT기획팀장으로 활동했으며, 2005년 하이트-진로M&A이후에는 그룹IT팀장으로 문서관리,그룹웨어,통합보안 프로젝트 등을 지휘했다. 2010년부터는 혁신팀장으로서 통합ERP, BI, SMART Office 프로젝트 등을 이끌었고,현재 회사의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dl-ciokorea@foundry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