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번아웃은 흔하고 심각한 문제다. 최근에는 AI가 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발자 번아웃의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변화가 빠르고 요구가 많은 분야다. 개발자는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혁신해야 하며 동시에 방대한 양의 코드를 작성해야 한다. 이로 인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포함한 많은 개발 직군 종사자들이 번아웃을 경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번아웃이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더 나아가 애초에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드루팔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드루팔협회(Drupal Association)의 최고기술책임자(CTO) 팀 레넌은 “번아웃은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오랫동안 지속돼 온 과제”라고 밝혔다. 그는 “나는 오픈소스 재단의 일원으로서 커리어와 오픈소스 활동 두 영역에서 개발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라며 “두 경우 모두에서 번아웃은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개발자 대상 콘텐츠 및 이벤트 전문 기업 리드데브(LeadDev)는 2025년 3월 전 세계 엔지니어링 리더 617명을 대상으로 ‘엔지니어링 리더십 글로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2%가 심각한 수준의 번아웃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약 24%는 중간 수준, 33%는 낮은 수준의 번아웃을 경험 중이라고 답했다. 반면 21%만이 ‘건강한 상태’로 분류됐다. 특히 건강한 상태로 분류된 개발자들은 직장에서 긍정적 피드백을 더 자주 받는 경향이 있었으며, 39%는 주 1회 이상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개발자 번아웃은 왜 발생할까
커리어 코칭 기업 커리어노매드(Career Nomad)의 CEO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패트리스 윌리엄스-린도는 “개발자 번아웃은 흔히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이며, 이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라고 표현했다. 그는 개발자 번아웃의 주요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업무 중단과 혼란이다. 윌리엄스-린도는 “개발자들은 프로젝트, 도구, 회의를 오가며 몰입 업무 시간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라고 설명했다.
둘째는 명확하지 않은 과업의 반복이다. 그는 “요구사항이 불분명하고 비즈니스 목표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개발자들은 일이 끝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이는 결국 탈진으로 이어진다”라고 지적했다.
셋째는 인간 중심이 배제된 도구와 프로세스의 도입이다. “교육이나 의견 수렴 없이 새로운 도구와 프로세스가 도입되면서, 보이지 않는 마찰이 발생하고 이는 인지적 에너지를 소모시킨다”라고 분석했다.
AI가 번아웃을 악화시키는 방식
업무 현장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이 확대되는 것도 또 다른 문제다. 디지털 마케팅 기업 웹시츠(WebCitz)의 설립자 데이비드 워스트는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개발자들은 이전보다 더 빠르고 저렴하게, 더 나은 솔루션을 제공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AI 도입으로 인해 많은 고객사와 개발 대행사가 지난 1년 동안 인력을 줄였다”라며 “결국 남은 인력이 추가 업무를 떠맡고, AI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까지 맡게 되며 팀 간 조율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이버보안 소프트웨어 기업 래피드포트(RapidFort)의 CEO 메흐란 파리마니는 “AI로 인해 변화 속도가 더욱 빨라지며, 개발자들은 기술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압박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파리마니는 “지속적인 학습은 개발자에게 활력을 줄 수 있지만, 모든 기술 발전을 즉각 받아들여야 한다는 기대는 인지적 과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선순위 없이 AI에 뒤처질까 봐 느끼는 일명 ‘AI FOMO(fear of missing out)’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바뀔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AI 기술로 인한 구조조정과 감원도 개발자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파리마니는 “대형 IT 기업에서 대규모 감원이 이어지고 있다”라며 “고성과 개발자라 하더라도 자동화와 대량 해고에 대한 뉴스는 경력 안정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재편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배경 잡음처럼 존재하면서 번아웃을 심화시킨다”라고 분석했다.
IT 자산 관리 소프트웨어 기업 플렉세라(Flexera)의 최고정보책임자(CIO) 코널 갤러거는 “고성과 개발팀의 번아웃과 스트레스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며 “디지털 전환과 보안 이슈에 시달려온 저인력 고강도 팀들이 AI 도입이라는 추가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갤러거는 “AI가 생산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실제로는 예산 없이 다양한 솔루션을 전환해가며 AI 도입을 추진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라며 “동시에 새로운 AI 솔루션이 초래할 수 있는 보안 위험까지 고려해야 하는 이중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재택근무, 번아웃을 부추기는 양날의 검
번아웃을 유발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재택근무의 확산이 꼽힌다. 집에서 일할 수 있게 되면서 개발자들은 근무 시간이 길어지거나 휴식을 잊는 일이 더 쉬워졌다.
래피드포트의 파리마니는 “재택근무는 사무실을 나서는 물리적 경계를 없애, 퇴근 후 다시 업무에 복귀하는 것이 거의 불가피할 정도로 쉬워졌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재택근무의 유연성은 분명 장점이지만, 업무와 개인 시간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하루 근무 시간이 어느새 8시간을 훌쩍 넘기게 되고, 이는 결국 만성적인 과로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밝혔다.
개발자 번아웃을 예방하려면
기술 리더와 조직은 번아웃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드루팔협회의 레넌은 “정치적·경제적 외부 요인은 조직이 통제하기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부 요인을 관리하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몇 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우선, 용량 기반의 애자일 프로젝트 관리 방식을 강화해야 한다. 마감일 중심의 일정 관리 방식은 외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며, 그 결과 반복적인 크런치, 마감 실패,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팀이 만들어질 수 있다.
레넌은 비즈니스 임팩트를 기준으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용량 계획(capacity planning)과 우선순위 조정(triage)을 병행해 진행할 것을 권장했다. 그는 “프로젝트 계획에는 반드시 결과를 측정할 시간을 포함시켜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항상 85% 수준에서 끝나지 못한 채 머물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업계 전문가들은 세 가지 핵심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1. 자율성을 높여라
레넌은 통제권 부족도 주요한 번아웃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선순위가 명확하지 않으면 개발자 입장에선 모든 일이 똑같이 긴급해 보이기 시작한다”라며 “일이 일관성 있는 흐름으로 진행되기보다 그때그때 문제를 수습하는 식으로 바뀐다”라고 설명했다.
우선순위 설정 절차를 투명하게 만들고, 일정 산정에 개발자를 참여시키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로드맵이 바뀔 때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면 자율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재택근무 정책이나 회의 시간에 대한 자율성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이 같은 자율성은 번아웃을 예방하는 핵심 처방”이라고 레넌은 말했다.
2. 개발자에게 영향을 주는 사안은 함께 논의하라
디지털 마케팅 기업 웹시츠(WebCitz)의 설립자 데이비드 워스트는 번아웃 예방 방안으로 개발자를 채용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을 제안했다. 이는 팀 내 조화를 유지하고 기존 인력과 어울리는 인재를 선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AI 도입에 대해서도 보다 협업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워스트는 “어떤 툴이 도움이 될지,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를 먼저 개발자와 논의해야 한다”며 “AI가 개발자 리소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계점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AI는 개발 속도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지만, 때로는 개발자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 수 있다. 워스트는 “AI가 모든 상황에서 유리한 것은 아니다”라며 “통합의 장단점을 논의하는 것은 개발자 스트레스를 줄이고 소통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라고 전했다.
AI 도구를 도입하는 조직이라면 리더십 차원에서 업스킬 경로에 대해 투명하게 소통하는 것이 직무 안정성에 대한 불안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파리마니는 덧붙였다.
3. ‘몰입 업무 시간’을 보호하라
커리어노매드의 윌리엄스-린도는 비즈니스와 기능 조직의 우선순위를 정렬해 몰입 업무 시간 블록을 보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각 스프린트의 성공 기준을 명확히 정의하고, 현실적인 일정에 기반해 하루 3~4시간가량의 몰입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 고객사는 데일리 스탠드업 회의와 이해관계자 업데이트를 재구성해 불필요한 맥락 전환을 줄였고, 그 결과 팀의 에너지와 생산성이 즉각 향상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또 “AI 코파일럿 등 새로운 도구를 도입할 때는 관련 교육, 명확한 활용 사례, 피드백 루프를 함께 제공해 개발자들이 ‘혼자 알아서 해결하라’는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라고 표현했다. 기술 도입은 개발자의 업무를 복잡하게 하기보다 단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발 성과 지표를 ‘코드 라인 수’나 ‘완료된 티켓 수’에서 시스템 안정성, 고객 만족, 팀 건강성과 같은 항목으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는 압박감을 줄이는 동시에 팀의 사기를 높이고 번아웃을 방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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