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 미래학자와 SF 작가들이 내놓은 21세기 관련 예견들을 다시금 들춰보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들의 상상은 당대 대중들의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됐고, 기술 개발의 행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들의 상상에서 전위적인 측면들만을 바라보며 우리의 기술이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우리의 윗 세대가 상상한 미래가 분명한 현실이 되었다는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어떤 부분들에 있어서는 우리의 현실이 그들의 상상을 월등히 넘어섰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20세기의 사람들이 상상한 미래와 우리의 오늘날을 하나하나 비교해보자.
애완용 로봇
미래학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20, 30, 40년대의 미래학자들은 다음 세기 인류에겐 애완용 로봇이 일상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질 것이라 믿었다. 심지어는 세계 박람회에 그들이 상상한 프로토타입 모델들이 전시되기도 했다. 애완 로봇의 원조격으로는 1928년 선보인 필리독(Philidog)을 꼽을 수 있고,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끈 주인공으로 1940년 구상된 스파코(Sparko)도 주목해볼 만하다.
이 프로토타입은 일종의 기계 장치로써 조작자가 내부의 기구와 와이어에 이런저런 조작을 가해 제한된 움직임을 느리고 서투르게 재현하는 수준이었다. 미래학자들은 컴퓨터의 발전을 통해 이 기계 강아지들이 로봇 강아지로 진화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당시의 미래학자들 가운데 BB-8과 같이 강력한 컴퓨팅 파워로 조작되는 가정용 애완 로봇을 상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주 스타트업 업체인 스페로(Sphero)가 공개한 BB-8은 150달러라는 합리적인 가격의 애완 로봇으로, 시장 출시에 앞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 로봇 역으로 열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BB-8이 출연하는 새 스타워즈 시리즈는 12월 개봉 예정이다.
BB-8은 스페로와 디즈니 간의 파트너십을 통해 개발된 로봇으로, 그 이름과 디자인 모두 영화 속 캐릭터 로봇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BB-8은 구형의 몸체에 자력(제조사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자석이 아닌 ‘포스’(혹은 ‘모조 역진자 매커니즘’)에 의해서라고 하지만)으로 머리가 부착되어 있는 형태다. 구형의 몸체가 굴러다니며 이동하는 동안에도 머리는 항상 상단에 머무르며 쉴새 없이 주변을 정찰한다.
사용자는 BB-8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풀어둘 수도 있고, 원격 조작기나 사전 설정 프로그램으로 그 움직임을 조작할 수도 있다. 압권은 음성 명령으로 BB-8을 놀려먹는 것이다. 사용자가 “함정이다!”라고 외치면 BB-8은 깜짝 놀라 얼른 방향을 바꿔 달아날 것이다.
스페로의 애완 로봇은 이 밖에 스마트폰의 카메라와 스크린을 이용해 증강 현실을 구현하는 모의 ‘홀로그램 커뮤니케이션’ 기능도 갖추고 있다.
BB-8의 ‘뇌’ 역할을 하는 것은 BB-8 앱을 구동하는 안드로이드, 또는 iOS 스마트폰이다. 앱 기반 구동 방식을 취함으로써 업데이트를 통한 신규 기능 추가를 가능케 했고, 프로세싱 파워 역시 스마트폰의 발전에 따라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귀여운 로봇 친구와 더 오래도록 뛰놀 수 있도록 한 제조사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한편 지난 세기의 미래학자들은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으리란(1997년 IBM의 딥 블루(Deep Blue)는 세계 체스 챔피언 개리 카스파로브를 꺾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참고로 딥 블루는 11.38 GFLOPS(1 GFLOPS는 초당 10억 부동 소수점 운영을 의미한다)의 성능으로, 아이폰6 A8 단일 칩 시스템 성능(115.2 GFLOPS)의 1/10 수준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거실을 굴러다니는 BB-8의 성능이 90년대 말 IBM의 최고 사양 슈퍼컴퓨터보다 10여 배 뛰어난 것이다.
즉 미래학자들은 애완 로봇을 예견했지만, 지금과 같이 발전된 형태를 상상하지는 못했다.
제트 팩
미래학자들은 또 우리 각자가 등에 개인용 이동 수단인 제트 팩(jet pack)을 매고 다니는 미래를 상상하기도 했다. 제트 팩의 아이디어는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었고, 실제로 이미 수십 년 전 구현된 바도 있다. 그리고 최근 닉 매컴버(Nick Macomber)가 시연한 제트 팩은 1960~70년대 미래학자들이 상상하던 그것을 근접하게 실현했다.
하지만 과거의 상상을 재현한 이 제트 팩은 사용자를 겨우 30여 초 간 공중에 띄워줄 수 있는 수준이며, 조작과 관련한 위험성이 높다. 대중적으로 사용되기는 무리가 있는 수준인 것이다.
이러한 고전적 형태의 제트 팩들과는 조금 다른, 하지만 (돈과 용기만 있다면) 누구나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발명품도 존재한다. 이브 로시(Yves Rossy)와 빈스 레펫(Vince Reffet)은 제트팩을 하드-윙 윙슈트와 결합해 슈퍼맨처럼 하늘을 나는 도구를 선보였다 .
세계 최초의 상용 제트팩이 될 로시와 레펫의 발명품은 내년부터 15만 달러에 판매가 이뤄질 예정이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마틴 제트팩(Martin Jetpack)을 검색해보시길.
날아다니는 자동차
시장엔 이미 수 종의 플라잉 카(Flying Car)가 선을 보이고 있으며 또 출시를 앞두고 있다. 사실 이러한 유형의 이동 수단은 ‘도로 주행 가능 항공기’라 설명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기본적으로 비행기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날개를 접어 도로 주행을 지원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플라잉 카의 쟁점은 오히려 기술 외적인 부분에 있다. 이를 운전하기 위해선 일반 자동차 면허가 아닌 파일럿 면허와 관련 트레이닝이 필요하며, 또한 날씨나 주행 가능한 영역 등의 측면에서도 일반 자동차보다 제약이 많다.
과거 상상한 플라잉 카는 공중의 모든 공간을 활용함으로써 교통 체증을 없애줄 혁신적인 아이디어였지만, 현실에서 막무가내로 차를 공중에 띄웠다간 사고와 처벌의 위험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이미 개발된 플라잉 카들이 시장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다. 자본력이 있는 소비자들의 경우 자동차도 아니고 비행기도 아닌 이 애매한 운송 수단을 구매하느니 진짜 자동차와 진짜 비행기를 한 대씩 구매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플라잉 카와 관련한 상상 속엔 분명히 현실성 있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바로 공항과 활주로가 없이도 항공기를 띄운다는 구상이다. 그리고 이 상상은 빠르게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른바 ‘수직 이륙’이라는 이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민간 기업으로는 테라푸기아(Terrafugia)와 XTI 두 곳이 대표적으로, 이들 기업은 각각 TF-X, 트리팬 600(TriFan 600) 이라는 이름으로 기술을 개발 중에 있다. 이 기술들이 상용화된다면 비행기를 집 뒷마당이나 건물 옥상에서 간편하게 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얄약 식사
20 세기 미래학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또 다른 아이디어는 끼니를 챙겨먹는 번거로움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미래학자들은 기술이 발전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한 알의 캡슐에 담아 먹음으로써 장을 봐서 요리하고 식탁을 정리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질 것이라 상상했다.
그리고 실리콘 밸리의 벤처 스타트업 한 곳이 이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있다. 소이렌트(Soylent)는 분말, 액상 형태로 제공되는 압축 영양소로, 복용자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동시에 환경 친화적이고 저렴한 먹거리임을 홍보하고 있다. 참고로 설명에 따르면 소이렌트로 식사를 해결할 경우 한 달 식비는 70달러에 불과하다.
이처럼 혁신적인 개발물이 그다지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하지 못하고, 또 다른 업체들이 시장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라면 우리가 실제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생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50년대의 미래학자들은 대중이 즐기는 식사의 수준이 오늘날처럼 높아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 인류는 많은 부분에서 지난 세기 미래학자들의 상상을 실현했고, 또 뛰어넘고 있다. 공중에서 야채를 기르고, 드론 운행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개발했으며(당연히 전과정 자동화로), 완벽히 컴퓨터화된 주방 시스템과 알아서 집을 청소해주고 잔디를 깎아주는 기계들을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는 로봇을 유치원에 보내 아이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게 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아직 달 식민지를 건설하진 못했지만, 대신 인류의 로봇이 화성에 가 있으며, 소행성에 착륙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은 일이 됐고, 명왕성을 망원경이 아닌 카메라로 촬영하는 시대가 됐다.
미래학자들이 상상한 ‘미래’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그 미래가 이미 도래해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과거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가고 있다. dl-ciokorea@foundry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