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을 낳는 사업’ 對 ‘학교 폭력의 주범’. 온라인 게임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제목들이다.
온라인 게임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벌이는 놀이다. 게임에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마땅한 놀이수단이 없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온라인 게임은 복음처럼 다가왔다. 이들은 게임에 열광했다. 이에 힘입어 온라인 게임은 우리나라에서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아날로그 세대들에게 온라인 게임은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이는 근거 없는 불안을 낳는 배경이 되고 있다. 최근 온라인 게임에 대해 ‘학교 폭력의 주범’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육^문화정책과 선정적인 언론 보도가 만든 합작품이다. 그 피해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온라인 게임이 우리나라에서 싹을 틔우고 발전한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세계 게임 시장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 게이머들은 일본 업체들이 개발한 게임(콘솔)을 즐겼다.
우리나라에서 온라인 게임이 확산된 것은 뜻밖에도 우리 경제에 빨강불이 켜졌던 외환 위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1997년)에 바로 이 땅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지원받아 가까스로 국가 재정이 파탄 나는 상황만은 막았다.
그러나 그 대가는 비쌌다. 기업들이 무더기로 도산했고, 직장인들은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났다. 이들은 퇴직금을 털어 PC방을 창업했다. 이들의 선택은 절묘했다. 당시 PC방은 초고속인터넷과 온라인 게임을 무료로 제공했는데 이들 서비스가 직장인과 청소년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성과를 이끌어낸 데에는 정부의 지원정책도 한 몫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취임한 후 우리 경제를 먹여 살릴 ‘미래의 먹거리’로 콘텐츠 산업을 꼽았다. 이를 계기로 이른바 ‘콘텐츠기술(CT)’이 크게 부각됐다. 이는 먼 미래를 내다본 선택이었다. 정부는 (온라인) 게임을 육성하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이에 힘입어 온라인 게임은 우리나라에서 꽃을 피웠고 그 후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온라인 게임은 초고속인터넷을 확산시키는 계기를 마련했고 이는 다시 게임 및 콘텐츠 산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통계 숫자를 보면 그 동안 게임업계가 거둔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온라인 게임 업체들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는 올해 10조원(매출액)을 넘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게임은 고용측면에서도 월등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정보기술(IT)이 발전하면서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게임분야만은 예외다. 올해 게임 업체들이 새로 뽑을 직원만 1만여 명에 달한다.
온라인 게임은 우리나라 경제의 압축 성장을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로 꼽힌다. 오늘날 우리가 ‘대한민국=온라인게임 종주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훈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햇볕이 한창 내려쬘 때에도 그 뒤에는 그늘이 드는 법이다. 온라인 게임도 이 문제에서만은 예외가 될 수 없다. 게임 업계 종사자들이 단맛에 취해 있는 사이에 독버섯도 자라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온라인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지 못한 것이 화를 키웠다.
요즈음 온라인 게임 업계는 초상집 분위기다. 온라인 게임이 ‘학교폭력의 주범’이라는 터무니없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발단이 된 것은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일어난 폭력사건이다. 경찰이 문제 학생과 피해 학생들을 따로 불러 추궁한 결과 이들이 평소에 온라인 게임을 즐긴 사실이 드러났다.
신문과 방송은 경쟁적으로 후속 보도를 쏟아냈다. 한 보수 언론은 “평범한 학생이라도 오랫동안 게임을 하면 폭력에 빠져 든다”고 성토했다. 이는 그 후 전개된 여론 몰이의 신호탄이 됐다. 바야흐로 온라인 게임업계를 겨냥한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
정부도 칼자루를 뽑았다. 학교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 청소년들이 오랫동안 게임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해 곧바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게임을 시작한 후 2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게임이 종료되는 ‘쿨링오프제(cooling off)’를 도입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이는 터무니없는 누명이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업체들도 책임이 있다. 문화상품인 게임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한 것에서부터 문제가 싹텄다. 게임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그 차이를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 첫 상업용 게임(핑퐁)이 처음으로 선보인 것은 1972년이다. 게임의 역사가 40년이 됐다. 그만큼 게임은 저변이 확대되고 문화가 무르익었다.
최근 미국에서 게임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게임 디자이너로 미래연구소 제인 맥고니걸 국장을 꼽을 수 있다. 그의 관심은 게임을 통해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최근 펴낸 책 ‘누구나 게임을 한다'(원제: Broken Reality)를 읽으면 그의 게임철학을 이해할 수 있다. 두 문장으로 요약되는 철학이다. 바로 ‘현실은 망가졌다. 현실보다 더 멋진 게임세상을 만들자’다.
맥고니걸 국장은 책에서 전 세계 게이머들이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미국 뉴욕시가 운영하는 게임 중심의 학교 ‘퀘스트투런’과 아프리카의 미래를 설계하는 아이디어 경진대회인 ‘이보크’ 등의 게임이 포함되어 있다.
책은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게임을 그리 즐기지 않는 필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게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온라인 게임업체들을 성토하는데 열을 올리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다. 또 게이머는 물론 일반인(비게이머)들에게도 교양도서로 강추!
* 필자는 비즈니스 코리아, 정보기술, 전자신문 등의 IT 미디어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IT 전문 칼럼니스트/저술가/전문 번역가다. 2008년 ‘대한민국 특산품 MP3 플레이어 전쟁’을 저술했고 지금은 디지털 비즈니스를 다룬 두 번째 저서를 저술하고 있다. kssuh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