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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응
By 천신응

IT리더에게 듣는다 | ‘지속 성장 숙제, IT로 풀어낸다’ 유한킴벌리 이제흔 이사

한국IDG의 미래 IT환경 준비 현황 조사에는 231명의 국내 기업 IT담당자들이 참여했으며, 이 결과를 토대로 <CIO Korea>

1970년 유한양행과 미국 킴벌리클라크가 합작 투자해 설립한 유한킴벌리는 여러모로 독특한 기업이다. 킴벌리클라크의 해외 자회사 및 투자사 중 유일하게 고유의 기업명을 쓰는 기업이며, 기저귀 등의 상품에서는 독보적인 국내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세계 시장 1위인 P&G를 제치고서다.

또 국내에 자체 R&D 센터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글로벌 기업의 투자회사지만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한 현지 기업의 특성 또한 짙은 셈이다. 유한킴벌리의 IT 부문을 이끌고 있는 이제흔 이사는 IT 측면에서도 이러한 성격이 묻어난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프라 상당 부분이 글로벌 표준화돼 있습니다. 킴벌리클락의 글로벌 IT 정책을 토대로 운영됩니다. 소비재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2002년에 SAP를 도입할 정도로 IT에 적극적인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였습니다. 하지만 e커머스나 모바일 기반 측면에서는 한국 시장이 글로벌에 비해 더 빠릅니다. 이에 따라 국내 시장의 앞선 사례나 솔루션을 발굴해 본사와 공유하기도 합니다.”

‘지속 성장’이라는 숙제
그러나 킴벌리클락의 글로벌 표준 IT 정책에 맞춰 IT 환경을 구축, 운영하는 것은 업무의 일부일 따름이다. 이제흔 이사는 오늘날 유한킴벌리를 둘러싼 여건을 설명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BCC(Baby & Child Care)가 이미 국내 시장 1위인 상황에서 출산율이 자꾸 저하되고 있습니다. 여성용품 분야 또한 5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어 대규모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확대를 기대할 만한 시니어 산업은 아직 시장 형성이 부진한 편입니다.”

그렇다고 해외 시장을 공식적으로 공략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요 국가에는 이미 킴벌리클라크가 진출해 있다. 실제로 유한킴벌리는 2015년 3,000억원 가까운 수출실적을 기록했지만 대부분 킴벌리클라크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것이었다. 즉 시장 확대 가능성이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 성장과 수익성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IT 부문의 명칭이 오늘(3월 15일)을 기해 ‘Digital Excellence’ 본부로 바뀐 이유가 이것입니다. 기존에는 ITS(IT Service) 본부였죠. 성장 드라이버를 디지털라이제이션에서 찾아야겠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반영된 조치입니다.”

동의할 수 있는 방향성이다. ‘IT 서비스’라는 이름이 PC 헬프 데스크를 연상시킨다면, 분명 ‘Digital Excellence’는 디지털로 인한 비즈니스 혁신을 염두에 둔 네이밍이다. CIO 코리아의 콘텐츠에서도 줄곧 강조되는 흐름이다. 하지만 디지털화의 물결이 소비재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파괴적인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크리넥스 티슈 소비가 디지털로 인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좀더 구체적인 디지털화 전략을 물었다.

“3가지 영역에서 새로운 IT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직원 업무 효율성을 위한 워크 스페이스 디지털라이제이션, 디지털 마케팅 및 유통 등 소비자 접점 측면에서의 디지털라이제이션, 그리고 제조 현장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 제조 디지털라이제이션입니다.”

이제흔 이사는 이와 관련해 IT 부문의 역할, IT 인력의 역할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기술력 자체보다는 비즈니스의 디지털 컨설턴트, 변화관리 역할까지 담당하도록 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디지털 엑셀런스 부분이 추천하는 전략과 솔루션을 현업에서 신뢰할 수 있도록 관계 관리(Relationship Management)까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IT 벤더가 아니라면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내재적으로 보유하기 어렵습니다. 기술 역량 내재화가 기업 경쟁력을 직접적으로 강화시켜줄 요인으로 보기도 어렵고요. 현재 유한킴벌리 IT 조직은 현업을 위한 서비스 기획 인력, 스마트 제조에 대한 전반적인 로드맵을 가진 인력, 데이터 분석 인력 등을 충원하는 등 현업을 위한 컨설팅 및 실행 가이드를 위한 조직으로 구성해가고 있습니다.”

맘Q,, 스마트 제조 등 가시적 성과
유한킴벌리의 디지털라이제이션 전략은 이미 상당 부분 진행형이다. 일례로 유아동용품의 경우 절반을 훨씬 넘는 매출이 온라인에서 비롯되고 있는데, 이는 킴벌리클라크 글로벌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다. 온라인 시장이 유독 발달한 한국 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시장에 대응하고 성공하기 위해 데이터 확보와 e커머스 전략을 위한 분석 툴 측면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킴벌리클라크 내 최초로 다이렉트 소비자 쇼핑몰인 ‘맘큐’를 작년에 론칭하고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이 한 사례입니다. 최근에는 기저귀 포장 패키지의 쿠폰 로열티 프로그램을 이미지 인식 기술과 접목시켜 디지털화하는 프로젝트를 킴벌리클라크 본사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스마트매뉴팩처링 전략도 구체적인 실행 단계라고 이제흔 이사는 전했다. 최근 스마트 매뉴팩처링 본부가 개설됐으며, 해당 부서에 IT 인력이 풀타임으로 협업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존에도 타 지역의 벤치마킹 대상일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던 유한킴벌리의 제조 역량을 ‘디지털’과 접목시킴으로써 새로운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이 밖에 워크 스페이스 디지털화는 4년여 전부터 꾸준히 진행돼 왔습니다. 이미 여러 미디어에 의해 기사화되기도 했죠. 언제 어디서든 업무를 스마트하게 볼 수 있는 모빌리티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물론, 수평적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는 데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급격한 시장변화, 디지털화, 사원 평균연령 상승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문화적 조직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

비즈니스, 비즈니스, 비즈니스!
이번 인터뷰는 한국IDG의 미래 IT환경 조사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클라우드나 빅데이터 등의 파괴적인 기술에 대한 CIO들의 관점과 준비사항을 정리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이제흔 이사는 기술 토픽보다는 일관적으로 ‘비즈니스’를 강조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IT 운영이나 기술은 우선순위가 밀린 것인지 물었다.

“IT 운영에서 인프라나 기술이 중요하지 않은 경우는 없을 겁니다. 굳이 말씀 드린다면 투자사인 킴벌리클라크는 SaaS 위주의 애플리케이션 전략 등을 이미 수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HR 시스템으로 워크데이가 기본이고 마케팅 분야도 클라우드 기반의 CRM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도 소셜 분석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새로운 인프라나 기술을 지속적으로 도입할 계획입니다. UC 측면에서도 스카이프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로드맵이 마련돼 있습니다.”

그는 그러나 기술 자체보다는 가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방안에 좀더 방점이 찍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특정 기술 자체가 대답일 이유가 없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디지털 기술은 그저 재료일 뿐입니다. 무궁무진한 활용 방안을 찾아 적절이 이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스마트 제조나 유통 합리화도 물론이고요. 소비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IoT 기술을 제품 쪽 개발에 접목시키고 소비자들에게 더욱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등의 다양한 응용처가 있습니다. 특히 유한킴벌리는 태어나자마자 사용하는 기저귀에서부터 평생 사용하는 티슈를 비롯해 전 연령대 각각에 걸쳐 각각의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소비자와 관계를 가지며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영역이라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제흔 이사는 이러한 관점을 기반으로 디지털 엑셀런스 본부의 가치 기반 프로젝트들이 현업 예산에 기반해 진행되고 있으며 성과지표 또한 철저히 비즈니스와의 연계를 통해 측정되고 있다고 전했다.

“가치 기반 프로젝트는 현업의 예산을 IT 부문이 받아 진행하는 형태입니다.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펀딩을 받는 형태죠. KPI 역시 본질적으로 변화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업타임이 주요 KPI였지만 이제는 현업 부문의 비즈니스 성과를 토대로 측정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순위 또한 비즈니스 혜택 관점으로 정렬됩니다.”

이러한 IT-비즈니스 정렬은 이제흔 이사가 유한킴벌리에 합류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당초 그는 한국 담당 컨설팅 파트너로 합류했었다. 한국 내 현업 부문과 IT 조직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갭을 이을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디지털화로 인한 변화가 촉발됐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개발과 인프라 위주의 조직 구조가 남아 있었습니다. 현업과 IT 사이에 비즈니스 관계 관리가 제대로 설정되기 어려운 구조였죠. 기존 IT 조직이 대응해주고 싶어도 킴벌리클라크의 정책과 충돌이 발생하니 대응해줄 수 없었습니다. 본부가 아닌 팀 단위이다 보니 주요 논의에서 빠져 있었고요. 이로 인해 현업 부문에서는 ‘우리 회사 IT는 안 된다는 말만 한다’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논의를 공유할 수 있는 조직 구조와 쌍방의 이해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2012년 글로벌 프로젝트를 위해 합류한 그는, 2013년 8월부터 본부로 승격된 유한킴벌리의 방향타를 잡아 지금껏 유한킴벌리의 디지털 전략을 이끌어오고 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IT에 대한 관점이 ‘비용절감’에 맞춰지는 순간부터 악순환이 시작됐습니다. 이러한 악순환을 깨는 유일한 방법은 비즈니스에 실제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비용 초점 논의를 가치 초점 논의로 바꾸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미래 IT 환경에 대한 논의 역시 이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봅니다.”

dl-ciokorea@foundry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