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N 발표에 따르면 IPv4 주소가 마침내 고갈됐다. 이로써 IPv6로의 이전이 한층 가속화될 전망이다. IPv6로의 전환과 관련해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을 정리했다.
몇 주 전 우리는 인터넷 시대의 한 이정표에 도달했다. 북미 지역의 인터넷 주소 할당 기관인 미 인터넷 번호 등록 협회(ARIN, American Registry for Internet Numbers)가 지난 9월 24일 IPv4 표준 기반 인터넷 번호가 고갈됐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일반 사용자들은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IPv4는 수백만 대의 컴퓨터와 스마트폰, 태블릿, 여타 스마트 기기들 간의 연결을 촉진하며 오늘날의 인터넷 환경을 있게 한 주역이다.
하지만 이 역할을 너무 잘 수행한 것이 IPv4의 최후를 앞당기게 됐다. 이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현함으로써 더 많은 사용자와 기기들을 시장으로 이끌었고, 결국에는 그 규모를 스스로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이 소식은 95년 제정 이후 오랜 기간 날개를 펴지 못하고 기다려온 차세대 인터넷 프로토콜, IPv6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이 새로운 표준은 전통적인 컴퓨터뿐 아니라 온도계, 시계, 자동차 등 다양한 형태로 그 수를 늘려가고 있는 스마트 기기들까지도 온전히 지원하기 위한 궁극적인 해답이다. 그리고 여기, 변화를 준비하며 알아둬야 할 몇 가지 이야기들을 소개해본다.
IP의 진화
인터넷 프로토콜(IP, Internet Protocol)이란 데이터가 인터넷을 통해 한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이동하는 과정을 다루는 일련의 규정을 의미한다. 우리 각자의 집이 개별적인 주소를 지니듯 각각의 컴퓨터는 하나의 IP주소를 가지며, 이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알려 정보를 수신한다.
그리고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IPv4는 이 프로토콜의 네 번째 버전임을 의미한다. IPv4는 국제적으로 상용화된 첫 번째 IP로, 1981년 처음 시장에 선을 보였다. 그리고 그 시기의 개발물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제 그 수명을 다하게 된 것이다.
IPv4는 각각 8비트로 이뤄진 네 영역, 총 32비트의 셈법을 이용해 주소를 부여한다(예: 194.66.82.11). 이 방식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주소의 수는 약 43억 개로, 방식이 처음 고안된 80년대에는 대부분의 가정이 모뎀은커녕 PC자체도 없는 시기였기에 누구도 그 수가 부족하리란 예상을 하지 못했다.
WIKIMEDIA COMMONS
그러나 불과 10년여 만에 가정용 PC의 가격이 하락하고 월드 와이드 웹이 등장하며 IPv4의 한계에 대한 우려가 논의되기 시작했고, 21세기에 들어 대부분의 가정이 한 대 이상의 컴퓨터를 보유하게 되고 나아가 스마트폰, 태블릿 등의 보급까지 가속화되며 우려가 현실화됐다.
그리고 이제는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부상과 함께 가정의 냉장고, 전등, 보안 카메라 등의 온갖 기기가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옴에 따라 그들 모두에게 고유한 IP를 제공하기란 어려워졌다.
이처럼 끊임없이 가속화되는 디지털 붐 속에서도 우리의 네트워크가 마비되지 않았던 것은 라우터 안의 네트워크 주소 변환(NAT, Network Address Transition) 지도들 덕분이다.
NAT는 라우터가 홈 네트워크와 인터넷 사이에서 일종의 대리인으로써 역할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로, 이를 이용해 우리는 하나의 IP만으로 가정의 여러 기기를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다. 이는 IPv4 주소가 지금까지 수명을 이어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IPv6(IPv5는 실험용 인터넷 스트림 프로토콜(Internet Stream Protocol) 검증에 이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콜론으로 구분된 8개의 16비트 영역, 총 128비트의 주소 공간을 구현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한다.
IPv6를 이용하면 340언데실리온(10의 12제곱)개의 고유 IP주소를 할당할 수 있다. 언데실리온이라는 단위의 규모가 낯선 독자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이는 37자리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전문가들은 IPv6를 통해 향후 수 세대 간은 IP를 충분히 할당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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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세대 프로토콜은 단순히 주소 할당의 측면 이외에도 여러 이점을 지닌다. 각각의 개별 데이터 패킷을 암호화하고 인증하는 프로토콜 스위트 IPSec는 IPv4 환경에서는 옵션으로 주어지던 내용이지만, IPv6는 이를 빌트인 방식으로 제공한다. 지속적인 확산세를 보이고 있는 사이버 범죄 위협을 제한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변화다. 접속의 강도나 효율성 등의 측면에 있어서도 역시 개선이 기대된다.
IPv6의 느린 발걸음
IPv6 주소 할당은 1999년부터 가능했지만, 시장 확산은 상당히 느린 속도로 이뤄져 왔다. 2015년을 기준으로, 세계 100대 웹사이트 가운데 IPv6 프로토콜을 적용하고 있는 곳은 14곳(페이스북, 구글, 위키피디아 등)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일부 실용적인 요인 역시 원인으로 작용했다. 수 년 전부터 IPv4의 고갈에 대한 지적이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프로토콜을 사용할 준비가 된 사용자의 수가 적었기에(IPv6는 IPv4 기기들과 하위 호환이 불가능하다) 기존의 웹사이트와 서비스들로써는 굳이 기존의 방식을 바꿀 동인이 없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원인은 전환 과정의 (실제적 혹은 인지적) 어려움이다. 많은 기업들의 경우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 Internet Service Provider)에게 요청하는 것 만으로 간단히 IPv6를 채택할 수 있지만, ISP나 자체 인터넷 서비스를 호스트 하는 기업들의 경우에는 백엔드의 변화가 매우 복잡할 수 있다. 또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작은 실수로도 서비스가 지연되거나 아예 웹사이트 접근이 차단되어 버리는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IHS 인포네틱스 리서치(Infonetics Research) 부문의 애널리스트 마이클 하워드는 IDG 뉴스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어떤 관리자에게도 벅찬 작업이다. IPv6는 분명 견고한 프로토콜이지만, 그것으로의 전환 과정은 모든 라우터의 조정이 필요한, 매우 세밀한 주의를 요하는 작업이다”라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설명했다.
그러나 ARIN의 우려대로 기존 프로토콜의 고갈은 현실의 문제가 됐고, 그에 따라 클라우드 공급자, 웹 호스트 등의 기관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ARIN의 압박 역시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모두가 언제까지 눈치만 보고 있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선 IPv4에서 IPv6로의 전환과 관련해 특별히 걱정할 점은 없다. 수고가 필요한 것은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를 비롯한 거대 기업들이다.
IPv6로의 전환은 거대 인터넷 서비스 기업 및 여타 기술 기업들이 고민할 영역이다.
소비자들에게 끼칠 영향
그렇다면, 당장 오늘부터 모든 인터넷이 IPv6로 교체된다면 우리 소비자들에겐 어떤 변화가 전달될까? 결론적으로 그리 큰 변화나 불편은 없을 것이다. 물론 IPv6의 호환성 요구가 컴퓨터 OS, 웹 브라우저, 백신 소프트웨어, 모뎀, 라우터, 게이트웨이, 네트워크형 TV, 블루레이 플레이어, AV 리시버, VoIP 장비, 화상회의 프로그램, 인터넷 기반 가정 보안 시스템 등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주요 기기들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치긴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컴퓨터 OS들은 이미 IPv6로의 전환에 대비되어 있으며(윈도우의 경우 비스타 시절부터 성숙한 IPv6 지원을 제공해왔고, 맥 OS도 팬더 버전부터, 그리고 iOS와 안드로이드, 여타 주요 브라우저들 역시 IPv6를 이전부터 지원해왔다), 새로운 형태의 스마트 기기들의 경우 IPv6 를 이미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전환 과정의 마찰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영역은 가정의 홈 네트워크다. 많은 구형 라우터들이 IPv6와 호환이 불가능하며, 별다른 기술적 지식이 없는 소비자들에게 즉각적인 대응을 기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해하지도 못할 IPv6라는 것을 위해 라우터를 새로 구매할 소비자들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 가정해본다면, 결국 남은 방법은 ISP들이 IPv4와 IPv6를 함께 지원하는 듀얼 스택(dual stack) 방식을 채택하는 것뿐이다. 실제로 이미 많은 ISP들이 이 방식을 시행하고 있다.
인터넷 모뎀 및 공유기는 일부 구형을 제외하고는 모두 IPv6를 지원한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인터넷이 IPv6로 이전하기까지는 앞으로도 한동안의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럼에도 미리 모든 준비를 끝내두고 싶다면, 여기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이 있다.
가장 먼저, TEST-IPv6.com에 접속해 현재 상태를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페이지에 접속해 몇 초만 기다리면 현재의 IPv4 주소와 ISP 명, IPv6 주소(보유 시), IPv6 브라우징으로의 전환 시 가능한 설정 문제, IPv6 대비 수준 등의 정보를 자동으로 확인해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ISP에 의해 운영되는) 사용자의 DNS 서버가 IPv6 주소를 갖추고 있는 지의 여부 역시 확인할 수 있다.
테스트 결과를 확인했다면 다음 단계는 서비스 공급자에게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을 취하는 것이다. 컴캐스트나 AT&T 등의 일부 ISP는 이전부터 IPv6 서비스를 제공하며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별도의 지원 사이트를 운영해오고 있다.
다음으로는 네트워크 장비들의 IPv6 호환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처음 서비스를 가입하며 ISP로부터 제공받은 모뎀이나 라우터, 게이트웨이를 이용 중인 사용자라면 문의를 통해 IPv6 지원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확인 결과 지원 불가 기종이라면 업체에 업데이트를 요청할 수 있다. 별도로 구매한 장비를 이용 중이라면 제조사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 여부와 업데이트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IPv6 포럼이 운영하는 IPv6 레디 로고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IPv6 호환성이 검증된 제품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기기를 확인할 때뿐 아니라 신규 기기를 구매할 때 있어서도 참고하기 좋은 사이트다.
마지막으로 기억해둬야 할 것은, 모든 요소를 IPv6 방식으로 완전히 전환했다면, 접속이 가능한 웹사이트가 오직 IPv6 지원 웹사이트들뿐일 것이라는 점이다. IPV6가 여전히 소수 집단임을 감안한다면, 당분간은 IPv4 역시 완전히 포기할 이유가 없다. 현재로서는 ARIN의 결정과 ISP들의 선도적 움직임을 지켜보는 게 온라인 생활을 즐기기 위한 합리적인 결정이다. dl-ciokorea@foundry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