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카이로스파워(Kairos Power), TVA와 계약을 맺고 용융염 원자로(Molten Salt Reactor, MSR)를 상업 전력망에 도입한다. AI 확산으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데이터센터에 안정적이고 탄소 배출 없는 전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글이 미국 테네시주에 건설되는 비냉각수 방식 원자로에서 데이터센터 전력을 조달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노심 용융(meltdown) 사고를 원천 차단하고 건설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차세대 원자력 기술을 기반으로 한 첫 상업 계약이다.
구글과 TVA(Tennessee Valley Authority), 원자력 스타트업 카이로스파워(Kairos Power) 간의 이번 계약으로 TVA는 기존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과 비용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설계인 4세대 원자로에서 전력을 구매하기로 한 미국 최초의 전력회사가 됐다.
카이로스파워와 TVA가 체결한 새로운 전력 구매 계약에 따라,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위치한 카이로스파워의 ‘헤르메스2(Hermes 2)’ 발전소는 최대 50메가와트 규모의 안정적인 24시간 전력을 TVA 전력망에 공급한다. 이는 테네시와 앨라배마에 위치한 구글 데이터센터로 전달된다고 세 회사는 공동 성명을 통해 밝혔다.
냉각수 대신 융용염 택한 원자로 설계
카이로스파워의 원자로는 기존 원자력 발전소와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설계를 채택했다. 냉각수를 사용하는 대신, 대기압에서 작동하는 용융 불화염을 활용해 전통적인 고압 원자로보다 구조가 단순하고 건설 비용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카이로스파워에 따르면 해당 원자로는 TRISO(Tri-Structural Isotropic) 연료를 사용한다. 이는 탄소와 탄화 규소 층으로 코팅된 미세한 우라늄 입자로, 극한의 온도에서도 물리적으로 녹지 않는 구조다. 카이로스파워의 기술 소개서에 따르면 “연료 커널은 연료 피복체 내부에 이중 차폐 구조를 갖고 있어, 다중 방어 메커니즘을 형성한다”라고 설명돼 있다.
카이로스파워는 또한 이 설계가 스리마일섬,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의 사고 이후 원자력에 대한 대중의 불안을 야기한 노심 용융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용융염 냉각재는 물 기반 시스템보다 방사성 물질을 더 효과적으로 가두며, 대기압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대형 격납구조물도 필요하지 않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지난해 11월 오크리지 시설 건설을 승인했다. 이는 미국에서 50년 만에 처음으로 허가된 비냉각수 방식 원자로다.
카이로스파워는 헤르메스2 원자로의 출력을 당초 계획된 28메가와트에서 50메가와트로 상향할 예정이며, 2030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동 성명에 따르면 구글은 2035년까지 카이로스파워 원자로에서 최대 500메가와트의 전력을 조달하는 방안으로 계약 범위를 확장했다.
기업 전력난으로 혁신하는 원자력 기술
AI 운영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기업들은 이를 해결할 새로운 에너지 해법으로 원자력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2014년 580억 킬로와트시(TWh)에서 2023년 1,760억 TWh로 증가했으며, 2028년에는 3,250억~5,800억 TWh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로 단일 GPU가 AI 연산에 사용될 때는 4인 가구가 하루 동안 소비하는 전력과 맞먹는 수준의 전기를 소모한다. 재생에너지와 달리 원자로는 날씨와 무관하게 항상 일정한 기저 전력을 공급할 수 있기에 24시간 가동되는 데이터센터에 필수적인 에너지원으로 꼽힌다.
구글은 테네시주 몽고메리카운티와 앨라배마주 잭슨카운티에 위치한 자사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 원자력 기반 전력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계약으로 공급되는 50메가와트 전력은 약 3만 6,000가구가 사용하는 전력량에 해당한다.
구글의 글로벌 데이터센터 에너지 총괄인 아만다 피터슨 코리오는 “미래를 위한 전력을 확보하려면, 똑똑하고 안정적인 에너지원의 가용성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개발 비용 분담하는 구조로 구매자 부담 최소화
이번 계약은 원자력 발전에 대한 비용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접근 방식을 도입했다. 전통적으로는 전력회사의 고객이 건설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구글과 카이로스파워가 원자로 건설에 필요한 비용을 직접 부담하고 TVA는 원자로가 가동된 후 전력만 구매하는 구조다.
방식은 TVA의 고객사가 실험적 프로젝트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다. 세 회사는 이번 계약이 “에너지 수요자, 전력회사, 기술 개발자가 함께 협력해 신기술을 발전시키는 3자 협력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확장성 한계로 단기간 내 기업 도입은 제한적
구글의 계약은 차세대 원자력 기술의 전환점을 보여주지만, 업계 분석가들은 이 같은 신형 원자로가 상당한 진입 장벽에 직면해 있어 대부분의 기업이 단기간 내 활용하기는 어렵다고 언급했다.
그레이하운드리서치(Greyhound Research)의 수석 애널리스트 겸 CEO인 산칫 비르 고기아는 “고급 원자로 기술은 충분히 빠르게 확장될 수 없어, 가까운 시점에 기업의 에너지 포트폴리오에는 포함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허가 절차, 10년에 이르는 건설 주기, 지역사회의 반발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상용화는 2030년대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딜로이트(Deloitte) 분석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예상되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분 중 약 10%만을 신규 원자력 발전 설비가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원자력의 이점은 자금력과 장기 전략을 갖춘 거대 기업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고기아는 “구글, MS, 아마존 같은 클라우드 대기업은 20~40 년에 이르는 장기 전력 구매 계약을 통해 초기 구축 비용을 감당할 수 있으며, 초기 도입에 따른 평판 리스크도 수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다른 기업은 이에 상응하는 재무 여력, 정치적 영향력, 규제 대응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라고 진단했다.
차세대 원전 확보 경쟁 가속화
주요 기술 기업이 원자력 발전으로 눈을 돌리는 가운데, 구글의 이번 계약은 4세대 원자로 기술에 대한 최초의 상업적 투자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기업 원전 투자는 대부분 기존 설계 방식의 원자로나 폐쇄된 발전소의 재가동에 초점을 맞췄다.
골드만삭스리서치(Goldman Sachs Research)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빅테크 기업들은 1만 메가와트(10GW)가 넘는 신규 원자력 발전 잠재용량 확보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러한 원전 투자는 클라우드 대기업들이 AI 개발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을 반영한다.
고기아는 “이런 행보는 상징적인 제스처가 아니라 디지털 인프라가 에너지 확실성에 의존하는 시대에 탄소 없는 고정 전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중소기업은 전통적인 재생에너지 계약이나 불안정한 계통 전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클라우드 대기업은 원자력 기반의 전력 안정성을 클라우드 요금에 자연스럽게 반영함으로써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원자력 발전의 강점은 저렴함보다 안정성에 있다. 고기아는 “원자력 전력 조달은 값싼 에너지보다는 예측 가능한 비용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계통 전기 요금이 급변하고 재생에너지 구매계약(PPA) 가격이 상승하는 세상에서, 원자력이 제공하는 가치는 최저가가 아니라 안정성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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