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유출된 내용과 소문이 사실이라면, 다음 세대 아이폰에서는 헤드폰 잭이 사라진다.
반기는 사람들 : 3.5mm 오디오 잭 시스템은 말 그대로 빅토리아 시대의 기술이다. 1878년 전화 교환원용으로 고안된 6.35mm 잭의 소형 버전인 오디오 잭을 없애면 아이폰을 더 얇게 만들고 방수 성능도 높일 수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 : 오디오 잭을 없애면 사용자에게는 손해다. 거추장스러워도 이 컨버터 잭이 없으면 수십 년 전부터 사용된 이어폰, 헤드폰, 기타 연결 기기가 아무 쓸모가 없어진다. 게다가 아날로그 헤드폰 잭에서 디지털 오디오로 전환할 경우 DRM(디지털 저작권 관리)이 더욱 엄격해지고, 이론적으로 애플이 비인증 헤드폰을 차단할 수 있는 여지가 더 커진다.
3.5mm 오디오 잭이 없는 아이폰이 출시된다면,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애플은 서류상의 쉘 컴퍼니를 통해 “에어팟(Airpods)”이라는 상표권을 소유하고 있음)이나 라이트닝 포트를 사용하는 이어폰이 아이폰에 포함될 수도 있다.
오디오 잭을 없앤 회사는 애플 말고도 있었다. 모토로라의 플래그십 모토 Z 폰에도 헤드폰 잭이 없다. 일부 소규모 중국 기업들도 헤드폰 잭을 없앤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애플이 잭을 없앤다면 업계 나머지 기업들도 모두 그 뒤를 따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오디오 잭에 관한 이러한 갑론을박과는 별개로 진짜 중요한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바로 스마트폰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점차 분산되고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언젠가 스마트폰 자체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날이 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어폰에서 일어나는 변화만 봐도 그렇다.
이어폰 혁명
지난 주 도플러 랩스(Doppler Labs)라는 업체가 히어 원(Here One)이라는 신제품을 발표했다.
도플러에 따르면 히어 원은 “세계 최초의 귓속의 컴퓨팅 플랫폼” 기술로, 아이폰에 사용되는 이어폰보다 아이폰 자체에 더 가까운 제품이다.
히어원 이어폰은 기존 이어폰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악과 팟캐스트를 재생하며 전화를 걸고 받는 기능도 있다.
일반적인 이어폰과 다른 점은 여러 개의 다중 코어 프로세서와 여러 마이크의 형태로 구성된 특수한 오디오 처리 기술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제어된다.
지금의 이어폰은 조금 과장하자면 두 개의 빈 통을 줄로 연결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히어 원 이어폰은 불과 몇 년 전의 PC보다 더 강력하다.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소리의 종류를 앱에서 조정한다. 예를 들어 아기가 우는 소리를 끄면, 아기 우는 소리를 뺀 나머지 소리만 들을 수 있다. 시끄러운 음식점에서 대화를 나누고자 할 때 배경 소음을 끄면 된다. 주변 소리를 차단한 채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원한다면 음악과 주변 소리 두 가지 모두를 동시에 들을 수도 있다.
이러한 고급 오디오 기술을 위해서는 수준 높은 처리 성능이 필요하다. 이어폰이 그 부분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주변의 모든 소리가 “녹음”과 “처리”를 거친 다음 수정된 상태로, 또는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재생되는데, 이 과정이 사용자가 전혀 지연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야 한다.
도플러는 적응형 필터링 기술이 단순히 특정 주파수를 무작정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소리를 듣고 거슬리는 소음을 분류한 다음 실제 “들리는 것”을 기반으로 이 소음을 걸러낸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왼쪽에서 아기가 울고 있는 상황에서 이 소리를 걸러내고 싶은 경우 왼쪽과 오른쪽 이어폰의 필터링이 각각 다르게 적용되어 소음 차단을 최적화한다는 것이다.
히어 원 이어폰은 11월 말에 출시 예정이며 현재 사전 주문 가격은 299달러다.
도플러 랩스의 히어 원 기술은 이어폰 혁명의 한 사례일 뿐이다.
브라기 대시(Bragi Dash, 299달러) 이어폰도 있다. 이 이어폰은 근거리 자기 유도(NFMI) 기술을 사용해 무선으로 연결되어 상호 동기화된다.
브라기 대시 이어폰의 잠재력은 풍부하다. 각 이어폰에는 23개의 센서가 내장되어 있으며 이러한 센서를 통해 향후 심박동수와 환경적 인수 등 다양한 요소를 추적할 수 있게 된다. 좌우 이어폰에 서로 다른 컨트롤 기능이 내장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음악과 볼륨을 제어하고, 달리기용 추적 기능 등의 피트니스 옵션을 시작하거나 중지하는 행동이 가능하다. 옵션을 고르는 도중에 이어폰 내에서 음성으로 옵션이나 음성 피드백도 제공된다.
이 이어폰은 일종의 지능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전원을 켤 필요 없이 귀에 착용하면 자동으로 폰에 연결된다(초기 페어링은 필요함). 이어폰이 귀에 이어폰을 밀어 넣는 동작을 인식하고 스스로 전원을 켜기 때문이다.
브라기 대시도 히어 원과 마찬가지로 음악과 주변 소음의 볼륨을 따로 제어할 수 있다. 음악을 끄고 주변 소음의 크기를 높이면(일명 투명(Transparency) 모드) 초인적인 청력을 가진 듯 주변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
히어 원과 브라기 대시는 이어폰의 미래를 보여주는 제품이다. 지능과 높은 처리 성능, 사용자가 들을 것과 듣지 않을 것을 맞춤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그런데, 도대체 이것이 스마트폰의 미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발전 방향: 스마트폰 인터페이스의 분산
이러한 차세대 이어폰은 뛰어나기도 하지만 비판을 받는 부분도 있다. 너무 비싼 가격, 무선 기기를 충전하는 데 따르는 불편함, 블루투스 이어폰과 헤드폰이 유선 제품에 비해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스마트워치를 비롯한 웨어러블에 대해 흔히 들을 수 있는 유용성과 기능에 대한 불평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구글 글래스는 대중에게 철저히 무시당했다. 저널리스트들은 베타 프로토타입이 어색하고 바보스럽게 보인다며 얼굴에 쓰는 전동 스쿠터 세그웨이(Segway)라고 평했다.
이렇게 웨어러블은 실망스러운 기술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웨어러블은 스마트폰 사용자 인터페이스, 또는 스마트폰 자체를 대체하는 용도에 한해서만큼은 매우 유용하다. 폰 대신 스마트워치의 화면을 보고 있다면, 스마트워치는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폰을 직접 사용해야 한다면 스마트워치의 효용성은 전혀 없다.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하나 하나 웨어러블로 대체될 것이다. 예를 들어 도플러 랩스 히어 원 같은 이어폰은 품질이 워낙 뛰어나서, 차후에 한 번 충전으로 하루 종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늘 착용하게 될 것이고, 항상 착용하게 될 경우 스마트폰에 내장된 스피커는 필요가 없게 된다.
가상 비서와 봇이 확산되면서, 화면에 입력하는 대신 웨어러블을 통해 스마트폰에 말로 지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알림과 업데이트는 무선 이어폰을 통해 소리로 전달된다. 갈수록 정교하고 다양화되는 햅틱을 통해서도 정보가 전달된다. 현재 스마트 안경에 사용되는 전자 부품들은 일반적인 형태의 안경과 선글래스에 완전히 내장되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되고, 사람들은 이 스마트 안경을 통해 편리하게 사진과 비디오를 촬영하고 혼합 현실 및 증강 현실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도플러 랩스의 히어 원 이어폰은 모든 웨어러블의 미래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히어 원의 월등한 품질은 스마트폰을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게 한다.
혼합∙증강 현실 스마트 안경도 비슷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스마트 안경이 발전을 거듭하면 결국 사람들은 폰의 화면보다 눈에 직접 투영되는 비주얼을 더 선호하게 될 것이다.
미래에 이어폰과 스마트 안경이 서로 연결되고 스마트워치의 부가적인 촉각과 시각 입력까지 더해지면, 스마트폰 단독으로는 생산할 수 없는 훨씬 더 다채로운 환경이 구현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스마트폰은 주머니나 지갑, 가방에서 꺼낼 일이 거의 없는 더 작은 형태의 스마트폰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스마트폰에 내장되는 모든 전자 부품이 스마트워치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 스마트폰은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이 모바일 “퍼스널 컴퓨팅” 비전은 철저한 개인 중심으로, 주변의 다른 사람은 기상 비서가 나에게 하는 말을 듣거나 촉각을 느끼거나 스마트 안경에서 눈으로 직접 뿌려주는 시각 정보를 볼 수 없다. 여러 가지 웨어러블이 함께 작동하면서 보이지 않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여러 웨어러블을 스마트폰에 대한 주력 또는 유일한 인터페이스로, 나아가 스마트폰의 대체재로 사용하는 이 비전이 현실화되면 우리는 스스로를 마치 컴퓨터처럼 느끼게 된다. 지금 시점에서 듣기엔 불편한 말일 수 있지만 막상 닥치면 신나는 경험이 될 것이다.
결국 애플의 오디오 잭이 어떻게 되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스마트폰 오디오의 세계는 사람들의 스마트폰 사용 방식을 급격하게 바꿔놓기 직전까지 도달했다. 궁극적으로 더 스마트한 웨어러블이 등장하는 미래에는 스마트폰의 필요성이 아예 사라질 것이다. editor@itworl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