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운전하고 심지어 사람보다 체스도 잘 둔다. 하지만 ‘컴퓨터가 못하는 일이 있을까?’는 정말 잘못된 질문이다. 기술
기술의 발달은 역설적으로 그것을 개발한 우리 인간에게 ‘내가 없어도 컴퓨터로 모든 게 가능해졌다’는 자존감의 하락을 야기하고 있다. 세계 체스 챔피언도, 제퍼디(Jeopardy) 퀴즈쇼의 우승자도 모두 컴퓨터로 바뀐 지 오래다. 컴퓨터는 어떤 사무관보다도 깔끔하고 완벽하게 서류를 정리하며, 전기만 충분히 공급해주면 열심히 일하면서 연봉에 욕심을 내지도 않는다. 공장의 단순 노동자들 역시 이제는 제3 세계 이민자들에 더해 최신형 컴퓨터와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 네모난 쇳덩어리들은 머지 않아 운전사와 택시기사들의 일자리 마저 위협할 것으로 예고하고 있다.
이제는 누구도 우리 인간이 기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확언할 수 없다. 최근 한 기사는 컴퓨터가 여전히 인간을 앞지르지 못하는 분야로 ‘유머’를 꼽으며, 때문에 심리 치료 활동을 컴퓨터가 대체할 가능성이 없다는 안심되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사의 작성자는 한 가지 핵심을 간과하고 너무 쉽게 결론을 내려버렸다. 컴퓨터와 관련한 논의의 핵심이란, 컴퓨터는 2년마다 두 배 가량의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인간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성장세다.
이 사실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질문 역시 달라질 것이다. 그간 우리는 ‘컴퓨터가 절대 수행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잘못된 질문으로 스스로를 괴롭혀왔다. 물론 이 역시 충분히 의미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찾아낸 답을, 컴퓨터가 깨부순다면, 그 다음은? 우리는 궁극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는 이러한 질문 대신, 새로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끝없이 발달하는 기술이 더 많은 일은 더욱 잘 수행하게 될 앞으로의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고 삶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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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이미 위의 일차원적인 논의로 낭패를 경험한 바 있다. 컴퓨터를 통한 자동 번역을 연구하던 초기 연구가들은 매우 비관적인 시장 전망을 가졌고, 때문에 60년대 중반 이후 수십 년 간 자동 번역 분야는 거의 아무런 발전도 이룩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구글은 온갖 언어를 번역하는 무료 서비스를 내놨고, 스카이프는 한 발 더 나아가 구문을 실시간으로 번역해내는데 성공했다(역시 무료로). 1972년 MIT의 허버트 드레퓌스 교수는 <컴퓨터의 한계(What Computers Can’t Do)>라는 저서를 출간하며 컴퓨터가 중급자용 체스 게임기 이상의 발전을 거두긴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1997년, 컴퓨터는 게리 카스파로프를 꺾고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2004년 2명의 저명한 경제학자는 운전이란 다층적인 정보에 대한 실시간의 판단을 요하는 매우 복잡한 작업이기 때문에 그 작업을 컴퓨터에 위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구글이 무인 자동차를 선보인 것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2007년에는 하버드 출신의 한 회의론자가 “공간의 배치를 분석하고 그에 기반해 본체를 움직이는 기기를 개발하기 위해선 매우 복잡한 엔지니어링 작업을 처리해야 한다. 스스로 계단을 오르는 무인 청소기가 개발될 수 없는 이유다”라고 지식을 뽐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아이로봇(iRobot)에서 가구나 애완동물, 아이를 건드리지 않고 집 안을 돌아다니는 바닥 청소기와 스스로 계단을 오르는 로봇을 개발해(두 기술을 모두 적용한 로봇 역시 충분히 개발 가능하지만, 충분하지 않은 시장 수요로 출시된 제품은 없다) 그를 민망하게 했다.
앞에서 언급한 사례들에서 우리는 동일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그 누구보다 똑똑한 지식인들이 컴퓨터가 절대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작업을 찾아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그 작업을 수행하는 컴퓨터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식이다.
기술에서 가치를 발굴해내고자 열성적으로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좋은 전략은 우리 자신에 관해 먼저 연구해보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자연적으로 우리 인간이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 수행해 주기를 기대하는 작업이 무언가를 포착한다면, 컴퓨터가 이룩할 진보의 방향성을 점쳐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고민 끝에 머리 속 전구가 켜지는 순간에 도달하면, 비로소 미래 경제를 이끌 고부가가치 작업을 발굴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강조되는 역량이 바로 공감, 사회적 민감도, 스토리텔링, 관계 구축, 협업, 주도, 공동의 창의적 문제 해결 등 각종 사회적 상호 작용 역량이다. 저명한 신경과학자이자 심리학자였던 마이클 가자니가는 이를 두고 “인간의 본질은 사회성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간의 사회성은 고대부터 생존을 위해 습득해온, 그리고 이제는 본능으로 체화된 자질이라는 것이 가자니가의 핵심 이론이다. 개인의 선호, 인지 여부와는 무관한 본성인 사회적 관계 기술을 인류가 쉽사리 망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이론은 단지 이론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기술이 담당하는 작업의 규모가 확대돼감에 따라, 직원 선발 과정에 있어선 소통 역량을 강조하는 고용주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 기업들에서 강조되는 소통 역량들을 살펴보자:
● 공감 능력: 공감이란 다른 이의 생각과 감정을 포착하고 여기에 적절히 대응하는 능력이다. 이는 유의미하고 완결된 고객 경험을 구성하는데 필수적인 자질이다.
● 협업 능력: 팀 활동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조직 내에서 아이디어를 생성, 공유, 개선, 수용, 폐기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개인의 총합 이상의 성과를 창출해낼 수 있다.
● 스토리텔링 능력: 인간은 본능적으로 단순한 사실보다 잘 짜여진 이야기를 더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단 여기에는 화자가 청자의 신뢰를 얻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이야기꾼으로서 청자의 설득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역량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우리 인간은 아직 로봇에게 설득될 만큼 진화하지는 않았다.
●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컴퓨터의 역량이 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해결할 과제를 선정하는 책임은 여전히 인간에게 돌아간다. 기업 환경에서 구성원들은 실제적인 문제와 목표가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수정해 나간다. 이 과정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조직의 창의성과 혁신 역량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컴퓨터의 능력이 발달할수록 그것을 바라보는 걱정스런 시선 역시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기술은 우리의 적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 활동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 우리는 기술들을 재평가하며 가치 없는 기술을 배제하고 더 나은 기술로 그 자리를 채워나갈 뿐이다. 더 이상 컴퓨터가 무엇을 할 수 없을까에 대해 고민하지 말자. 대신 인간이 해야만 하는 일을 고민하고, 그 일에 집중하자.
*Geoff Colvin은 포춘(Fourtune)의 편집장이며 <Humans Are Underrated: What High Achievers Know That Brilliant Machines Never Will >의 저자다. dl-ciokorea@foundry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