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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in Chief B2B COMPUTERWOCHE, CIO, CSO in Germany

52년 발자취’… 하소 플래트너 회장 은퇴, 새 국면 맞이한 SAP

SAP SE(이하 SAP)의 창립자 시대가 마무리된다. 하소 플래트너 SAP 경영감독위원회 회장이 지난 15일 열린 연례 주주총회에서 은퇴 소식을 발표했다. 그가 떠나면서 SAP는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 중에서도 먼저 광범위한 구조 조정에 직면하게 됐다.

하소 플래트너는 창립자이자 이사회 멤버로, 그리고 2003년부터는 경영감독위원회 회장으로 50여 년간 유럽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 SAP의 운명을 결정지어 왔다. 올해 80세가 된 플래트너가 감독위원회 회장직을 내려놓고 SAP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SAP의 시작은 1972년 4월, 5명의 전 IBM 직원이 독일 바인하임에 설립한 회사 ‘시스템 분석 및 프로그래밍(Systemanalyse und Programmentwicklung)’이었다. SAP는 초기부터 사용자가 작업을 수행하는 개별 구성 요소의 통합을 핵심 설계 원칙으로 삼았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재무 회계, 구매, 재고 관리, 주문 접수, 자재 계획, 송장 발행 및 감사를 위한 모듈을 프로그래밍했다. IBM, 지멘스(Siemens)의 점점 더 강력해지는 컴퓨터 아키텍처와 결합된 통합 시스템이라는 개념은 초창기에는 거의 혁명에 가까웠다.

이것이 독보적인 SAP 성공 스토리의 출발점이다. 수십 년 동안 디트마어 호프와 하소 플래트너를 중심으로 한 소수의 창립자들, 이들의 야망과 내부 경쟁 관계는 SAP의 성공과 긴밀히 연결돼 왔다.

오늘날 IT 스타트업이 투자자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받을 땐 엄청난 압박이 따르지만, SAP의 초기 상황은 조금 더 여유로웠다. 호프는 2015년 NWZ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운이 좋았고, 적재적소를 찾을 수 있었다. 스타트업으로서의 기간은 약 10~15년 지속됐다”라고 말한 바 있다.

1988년 기업공개(IPO) 이후 호프와 플래트너는 상호 합의에 따라 SAP의 권력을 나눴다. 호프는 1998년까지 CEO를 맡았고, 플래트너는 기술 및 개발, SAP의 미국 시장 진출을 담당했다. 플래트너는 스미소니언 어워드 프로그램의 구술 역사 프로젝트(Oral History Project)에서 “1988년부터 1992년 사이는 정말 멋진 시기였다. 매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좋은 때였다”라고 회고했다. 플래트너는 호프가 경영감독위원회에서 은퇴한 1998년에 그 후임으로 합류했다.

몇몇 비판도 있지만, 특히 제품 전략과 관련해 플래트너가 SAP 전략에 미친 영향은 계속 강조할 만하다. 그는 1990년대 초 R/3의 개발을 이끌었으며, 2010년에는 그의 펫 프로젝트인 인메모리 데이터베이스 HANA를 성공시켰다. 이 기술은 2015년 출시된 ERP 제품군 S/4HANA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플래트너가 발언권을 가졌던 다른 인사 결정에서도 운이 항상 따른 것은 아니었다. 리더십 승계와 유지보수 비용 인상 문제 등으로 몇 년 동안 고객 관계가 악화됐고, SAP는 결국 가격 정책을 수정해야 했다.

그러던 중 CEO 빌 맥더못이 2019년 말에 돌연 사임하는 일도 있었다. 서비스나우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서였다. SAP는 크리스천 클라인과 제니퍼 모건의 공동 경영 체제를 결정했지만, 이는 짧은 기간 동안만 유지됐다. 2020년부터는 클라인이 단독 CEO를 맡고 있다.

이렇듯 많은 변화를 겪는 와중에도 플래트너와 감독위원회는 경영진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클라인은 “이런 지원이 없었다면 3년 전 주가가 30% 하락할 수 있다는 리스크를 안고 전략 변경을 실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앞으로도 SAP의 변화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잘 짜인 승계 계획
승계가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플래트너는 2022년에 2년 더 회장직을 연임했다. 플래트너는 2022년 5월 SAP 연례 총회에서 “경영감독위원회 회장직을 올바른 사람에게 맡기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고 감정적인 일이며, 이를 위해 계속 노력해 왔다”라고 말했다.

2023년에는 감독위원회에서 승계 계획과 관련한 움직임이 있었다. 딜로이트의 전 CEO였던 푸닛 렌젠이 적임자로 언급된 것이었다. 플래트너는 “이를 통해 감독위원회 최고위층에서 구조적 전환이 시작될 것이며, 이는 회사가 더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플래트너의 후임 자리를 채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2023년 2월 렌젠이 돌연 사퇴했기 때문이다. 렌젠이 감독위원회 회장으로 임명되기 3개월 전, SAP는 그가 상호 합의에 따라 물러났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SAP는 렌젠의 후임으로 전 노키아 사장인 페카 알라 피에틸라가 감독위원회 회장직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그를 영입했다.

플래트너는 “페카 알라 피에틸라는 업계와 유럽 SE 거버넌스의 복잡성을 잘 이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SAP의 중요한 순간마다 조력자 역할을 해온 리더다. 알라 피에틸라의 선임으로 SAP의 감독위원회가 최고의 인물을 맞이하게 됐다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SAP가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SAP의 고객층이 정체돼 있어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새로운 제품군으로의 마이그레이션도 시작부터 어려웠다. 하지만 플래트너에게 망설임은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다.

플래트너는 2015년 독일 컴퓨터월드(Computerwoche)에 기고한 글에서 “판매 성공, 기록적인 시간 내에 완료된 구현, 생산성 높은 고객 만족 이후에도 여전히 같은 질문과 우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해당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비즈니스 가치에 대한 플래트너의 고민은 IT 예산이 빠듯한 시대에 기업 사용자를 계속 이끌고 있다.

클라우드의 문제
SAP 창립자들은 메인프레임에서 클라이언트 서버 시대로 넘어가는 주요 전환점을 잘 파악했지만, 플래트너와 SAP는 클라우드의 역동성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SAP는 AI에 있어서도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기를 원치 않고 있다. 모든 LLM 기업과 협력하고 있으며, 자체 AI 봇인 ‘쥴(Joule)’도 출시했다. 하지만 새로운 AI 기술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고객이 S/4HANA와 클라우드로 전환해야 한다.

고객 측면의 변화와 더불어 SAP 자체도 바뀌고 있다. 올해 초 클라인은 클라우드와 AI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포괄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발표했으며, 플래트너는 이를 지지했다. 최근 주주총회를 위한 마지막 서한에서 플래트너는 2020년 SAP가 클라우드 비즈니스에 전적으로 집중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힘든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AI 애플리케이션 시나리오를 개발하려면 더 많은 자원의 이동과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SAP의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진화하고 변화해야 한다. 경영진은 감독위원회와 협의해 결정을 내렸으며, 감독위원회는 이 전략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라고 말했다.

다음 단계
최근 몇 년 동안 독일 IT 업계에서 플래트너를 자주 마주칠 순 없었지만, 사용자들은 여전히 그를 존경하고 있다. 독일 SAP 사용자 그룹 DASG는 “하소 플래트너는 지난 50년 동안 놀라운 업적을 남겼다. 그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고객사 3,800곳 모두의 진심 어린 존경과 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다. DSAG는 SAP를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시킨 플래트너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에 감사를 표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플래트너는 여전히 후원자로서 계속 활동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1998년에는 포츠담에 하소 플래트너 소프트웨어 시스템 엔지니어링 연구소를 설립하고 자금을 지원해 독일 과학 분야의 주요 민간 후원자가 됐다. 또한 독일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박물관 중 하나인 바르베리니 궁전의 재건에 자금을 대 여러 건물의 개보수를 지원했다. 교육 및 문화 분야에도 관여해 2015년 하소 플래트너 재단을 설립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선 의료 및 보건 교육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플래트너는 최근 독일 컴퓨터월드와의 인터뷰에서 사회 공헌과 관련된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만약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느냐고 질문받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너무 위험하거나 너무 어려웠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이는 좋은 대답이 아니다.” dl-ciokorea@foundryco.com